중국이 장악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 한국 배터리 기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SK온이 전기차용 LFP 배터리 개발을 마치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본격적으로 공급하기에 앞서 시제품을 생산 중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전기차에도 ‘가성비’ 바람이 불면서 LFP 배터리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현재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장은 중국 기업의 독무대다. SK온은 기술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추격전에 뛰어들었다.
6일 배터리 및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대전연구소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제품을 생산 중이다. SK온은 오는 15~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 최대 배터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에서 시제품을 첫 공개할 예정이다. 시제품 제작에 돌입한 건 저가형 전기차 공급업체와의 계약이 임박했고 상용화로 가는 출발선에 섰다는 뜻이다. 한국 배터리 3사 가운데 전기차에 탑재하는 LFP 배터리를 만든 건 SK온이 최초다. 본격적 양산 체제를 갖추는 시기는 2025년쯤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SK온의 LFP 배터리 개발 성공 여부와 성능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SK온의 LFP 배터리 시제품은 삼원계 배터리(NCM·NCA)에서 확보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저가형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SK온에서 개발한 파우치형 LFP 배터리는 영하 20도 안팎의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50~70%로 급감하는 기존 중국산 배터리의 단점을 70~80%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니켈 배터리를 통해 축적한 소재·전극 기술을 LFP 배터리에도 적용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LFP 배터리의 최대 약점인 짧은 주행거리를 기술력으로 보완한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차지였던 LFP 배터리 시장에 한국 업체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얼마나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고객사를 확보할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의 최대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CATL, BYD 등 중국 기업들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출하량의 95% 이상이 중국 몫이다. 이들 회사에서 LFP 배터리를 받아 전기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와 포드 두 곳이다.
삼원계 배터리는 최근 원재료인 니켈, 코발트 등 희귀금속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산원가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철을 쓰는 LFP 배터리가 주목을 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차세대 엔트리급 전기차 모델에 LFP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을 밝히고 나섰다.
배터리·전기차 시장조사 업체인 EV볼륨에 따르면 지난해 LFP 배터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7.2%다. 2020년(5.5%)까지 한 자릿수에 머물렀으나 2021년(16.9%)부터 2년 연속 10% 포인트 이상 뛰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업체들이 어떤 배터리를 요구할지 모를 상황에서 ‘배터리 다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중국 기업의 급성장으로 한·중 간 배터리 시장 점유율 격차는 커지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중국 CATL와 BYD의 배터리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각각 145%, 165% 폭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은 19%, 삼성SDI는 67%, SK온은 83% 느는데 그쳤다. 여기에다 완성차·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SK온과 파트너십을 이어오던 포드는 CATL과 손잡고 35억 달러(약 4조5000억원)를 들여 미국 미시간주에 LFP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 LFP 배터리 기업들의 북미 시장 침투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LFP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 업체는 후발주자 입장이다. 고가형 배터리 시장에서 저가형 시장으로 화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원 양민철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