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비긴즈] 가정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서 교회 개척을 준비한다고?





가족과 함께 가정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서 개척교회를 준비하는 목회자? 이건 분명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 개척 공동체엔 목회자 가정이 기본 옵션이다. 그런데 마치 다른 성도들이 기본 옵션, 목회자 가정은 추가 옵션인 양 개척을 준비했다.

‘개척 1호 성도가 아내고 딸인데….’ 이 진리를 찾아 바보 온달처럼 헤매고 있을 때 평강공주 같은 아내의 말 한마디가 화살처럼 꽂혔다. “우리 가정예배부터 드려요.” 5월 어느 수요일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어색하게 거실에 둘러앉아 예배를 시작했다. 짧은 기도에 이어 함께 묵상할 성경 구절을 펼쳤다. 순간 딸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갈 길을 잃은 손이 다니엘서를 찾아 신약성경 앞뒤로 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성경 말씀을 찾는 게 서투른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니.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사역을 맡았던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말씀 찾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던 내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촤르르 흘렀다. 목양의 울타리에서 어린양들을 위해 꼼꼼하게 PPT 파일을 준비하고 성경 말씀을 프린트해서라도 예배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던 나였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가정 안 어린양에겐 말씀 찾는 법을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다.

설교할 땐 더 큰 난관이 닥쳤다. 딸은 하품을 하고 아내는 갸우뚱한다. 망했다. 우리 가족의 ‘우당탕탕 가정예배’는 이렇게 시작했다.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한 수요일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떤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교회를 개척했다고 가정하고 상황을 그려보니 아찔했다. ‘개척? 이게 맞는 길일까?’

일러스트=이영은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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