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대표적 영적 질환이 있습니다. ‘영적인 영양실조’입니다. 마땅히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말라야 하는데 이런 상태를 전혀 느끼지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겉사람의 욕구만을 채워주는 헛배만 불러 심각한 영양실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는데도 느끼지를 못합니다. 영적인 지각이 열려야 깨닫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시대는 모든 성도들이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정복하는 전쟁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믿음의 승리에 대한 간증으로 넘쳐 났습니다. 안되는 것, 지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인 사사 시대에 와서 이런 트렌드는 급격하게 달라집니다. 소수의 성도들만 영적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대부분은 주저주저하며 외면했습니다. 당연히 계속되는 패배와 고통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분별하고 있습니까? 때를 바르게 분별해야 어떻게 행할지 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평화롭고 안전한 시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영적 전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소수의 성도들에게 이 전쟁의 부담이 집중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삼손은 혼자서라도 원수와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강력해진 블레셋을 이길 수 없다는 지독한 패배의식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이방 여인을 아내로 둔 탓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양쪽으로부터 다 미운 털이 박히게 됩니다. 예수께서 “인자는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삼손에게 딱 어울립니다. 블레셋의 장인은 삼손과 결혼한 딸을 다른 블레셋 사람에게 줘 버립니다. 아마 사위로 인해 화를 당하게 될까봐 두려웠나 봅니다. 삼손은 격분해 여우 300마리를 붙들어 꼬리를 묶은 후 횃불을 매달아 풀어 놓습니다. 꼬리에 횃불이 매달린 150쌍의 여우 꼬리 횃불 전차가 블레셋의 추수 밭을 좌충우돌 누비며 곡식들을 다 불태워 버립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격분해 삼손의 장인과 그의 아내를 붙잡아 불살라 버립니다. 삼손은 더 큰 격분으로 원수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쳐 죽여버립니다. 다시 더 크게 격분한 블레셋 군대가 유다에 진을 치고 성도들과 큰 전쟁을 벌이려고 합니다. 그 기세에 눌린 유다 사람 3000명이 싸움을 포기하고 지도자 삼손을 밧줄로 결박해 원수에게 넘겨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일화가 실제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삼손이 결박당한 채 블레셋 군대 주둔지에 이르자 원수들이 열광하며 기뻐합니다. 그 환호 소리에 갑자기 성령의 권능이 삼손을 사로잡아 원수의 결박을 끊어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됐던 손에서 떨어진지라”(삿 15:14)

기도할 때 성령의 권능이 임함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묶고 있는 원수의 결박이 풀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원수의 결박이 풀어지자 삼손은 나귀 턱뼈를 들고 블레셋 원수 1000명을 쳐 죽여 두 무더기로 쌓습니다. 그곳을 라맛 레히, 턱뼈의 산으로 이름합니다. 죽일 듯이 달려들던 강한 자들을 성령의 권능으로 물리치고 나자 삼손의 정신이 돌아옵니다. 목이 말라 죽을 정도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 부르짖습니까. 죽을 정도로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다 외면하고 포기했는데도 끝까지 치열한 영적 전쟁을 감당하게 될 때 일어나는 ‘탈진 현상’입니다. 간절하게 부르짖는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한 우묵한 곳 반석에서 생명샘이 솟게 하심으로 영혼육이 회복됩니다. 지금도 솟아나는 이 샘의 이름은 ‘엔학고레’입니다. 즉 “부르짖는 자의 샘”입니다.

박진석 포항 기쁨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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