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악의를 갖고 하는 거짓말이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도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거나 좋은 관계를 위해 선한 의도로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아과 병원에서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을 때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요”라고 한다든지 다이어트하는 사람에게 “얼굴이 반쪽이 됐네”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거짓말 중 ‘괜찮아’라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괜찮아’는 나 자신에게도 하고 다른 사람한테도 합니다. 괜찮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거나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괜찮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괜찮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8절)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 소망이 끊어져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다’고 표현했을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늘어놓는 넋두리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의 말이기에 그가 얼마나 위중한 상황이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바울은 놀라운 반전의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9~10절)
환난과 고난으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상황(8절)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9절)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망에 처하게 되면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나의 능력 끝’이 ‘하나님의 능력 시작’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성경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변에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난할 때 하나님을 만난 이들의 간증이 많습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가르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자살의 원인을 설명할 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면 삶의 의미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절망이 끝이지만 우리에게 절망은 하나님을 만나는 희망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셨습니까. 절망의 끝에 서 계십니까. 그렇다면 절망의 끝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시간입니다.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는(10절)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항철 목사(함안 비전교회)
◇비전교회는 경남 함안의 농촌 마을에서 ‘비전 빌리지’라는 이름으로 교회, 농장, 빌라, 학교 등 기독교 마을 공동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재정의 50%를 전도와 구제에 사용하며 성경적 복음주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