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가 국내 벤처캐피탈(VC)의 스타트업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VC 출자사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공제회가 설립 3년 이내 신생 VC를 지원하는 ‘루키리그’ 선발을 올해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인공제회(과기공) 등 복수의 공제회는 올해 벤처투자 출자사업에서 신생 VC가 만드는 벤처조합에 자금을 집행하는 ‘루키리그’를 포함할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과기공 관계자는 “과거에는 격년에 한 번씩 하는 것으로 루키리그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전체적인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군인공제회는 루키리그에서 위탁운용사인 벤처캐피탈을 선정하지 않았다. 군인공제회는 80억원의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었고 공고까지 냈지만 마땅한 운용사가 없다는 이유로 선정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만큼 공제회의 투자 성향이 보수적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군인공제회는 2020년부터 루키리그를 도입해 운영해왔다.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일부 공제회에만 그칠 사안이 아니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른 공제회나 연기금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긴축 기조 등으로 지난해부터 이미 줄기 시작한 벤처투자 규모가 올해 더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21년 7조6802억원으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국내 VC 신규투자 규모는 지난해 6조7640억원으로 11.9% 감소했다. VC들의 주 재원이 되는 출자사업의 규모가 줄면서 신규투자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생 벤처캐피탈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공제회 내부에서 신생사에 자금을 집행한다고 말하면, 최종적으로 승인을 받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잘 알려진 대형 VC를 선정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금융권 전반에 확산될 전망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공제회 등이 출자를 해준다 하더라도 VC가 민간자금을 끌어오지 못해 운용사 지위를 반납한 경우도 있었다”며 “제2금융권과 증권사, 손해보험사, 카드사, 캐피탈사 등이 벤처투자에 지갑을 닫았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4대 금융지주나 농협중앙회 정도를 제외하면 벤처투자를 집행하는 기관은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투자 상황이 악화하면서 신생 벤처캐피탈의 경영난은 가중되고 있다. VC 업계 관계자는 “신생사의 경우에는 제대로 월급을 주지 못하는 회사도 많다”며 “투자한 회사의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곳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