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신 목사 “인생에 패자부활전은 없다. 하나님만이 부활케 하신다”

미주국민일보-국민문화재단 공동기획
 

목회자 탐방<6> 오늘의목양교회 장동신 목사
 
장동신 목사.

연합과 가정. 무슨 연관이 있을까.

“너희는 주 안에서 하나 되라!” 말씀처럼 장동신 목사의 목회활동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교회의 연합,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 그리고 뉴저지 연합 기도운동. 또 아버지학교와 하나님의 가정학교 세미나처럼 소리없이 열정을 쏟는 사역.  

장 목사는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셨고 교회의 본질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20년 군목 생활을 소령 예편하고 2주만에 미국행. 도착 하자마자 다시 교회를 개척하게 된 상황. 장 목사가 왜 교회와 가정 그리고 사람에 애착을 가지고 영적 각성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웃는 표정과 아재개그로 숨겨지지 않는 사역에 대한 추진력이 느껴졌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 아닌 사람
교회 없어지니 기도 중요성 깨달아


-매주 열리는 ‘뉴저지 연합 기도운동’을 소개하면. 
“지난해 연말 필그림교회가 교단으로부터 나왔다. 교회 건물이 없어진 상황에 그 교회의 장로와 다른 교회 여러 장로들이 격려하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본질이 건물이냐 사람이냐’를 논의했다. 교회 건물이 없어지니 교회라는 것이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교회’라는 교회적 가르침을 실제로 체험을 했다. 

교회된 우리는 뭘 할 것인가. 교회의 본질은 ‘사람이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고 확실히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교회구나’라고 깨달았다. 교회된 우리가 뭘 할 것인가 생각할 때 ‘교회의 본질’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의 뜻’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새벽기도할 장소가 없어지니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로들이 토의를 하다가 뉴저지에서 기도모임을 했으면 좋겠다며 기도를 인도할 목사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장로가 ‘장동신 목사를 찾아가면 일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저를 찾아왔다. 그리고 장로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기도회 인도였다.

참여자도 장로들이 모은다고 했다. 조심스러웠던 것은 의뢰한 장로가 필그림교회 교인이라서 ‘필그림교회가 원하거나 주최하고, 양춘길 목사가 관련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로들도 ‘이것은 필그림교회와 상관없고,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고 조심스럽다. 순수하게 기도만 하고 싶다’고 얘기 하셨다.

그래서 저도 이해를 했지만 목회를 하는 목사라 ‘다른 교회 배경으론 못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기도만 하겠다면 기도회를 인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여러 장로와 약속한 후 두 가지를 제안했다. ‘장소는 내가 찾지 않겠다. 내가 찾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리고 다니시는 교회의 담임목사 허락을 받으면 하겠다’고. 다행히 교회 목사들도 승인해 참여할 목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목사 중 한성개혁교회 송호민 목사, 뉴저지 주은혜교회 권광희 목사, 시온제일교회 원도연 목사, 하희커뮤니티처치 서정학 목사가 참여했다. 또 이병준 목사, 김종국 목사께 자문도 구했다. 

이렇게 준비를 했고 장로들도 평신도를 모았다. 올해 1월 첫째 주부터 하려고 했는데 폭설로 1월 11일 시온제일교회에서 28명이 모여 첫 기도회를 열었다. 이 교회에서 3개월간 진행했다. 

3개월 동안 참석자가 30명을 못 넘었다. 3개월이 지나며 기도회에 참여하던 한성개혁교회 송호민 목사가 교회 사용 허락을 받아 그쪽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근 7월 12일까지 26차 모임을 가졌고 대략 40명 선이 유지되고 많으면 60명 정도 된다.

기도회 진행도 처음 3개월은 설교를 10분만 하고, 3개월 뒤 15분으로 늘렸다. 기도제목은 4~5개를 정하고 찬양과 기도로 총 1시간 20분 정도 진행한다. 일절 사람들의 말을 넣지 않는다. 찬양과 기도를 반복한다.
 
기본적인 기도 제목은 ‘영적 대각성과 개혁을 기도합니다’로, 모임은 ‘뉴저지 연합 기도운동’으로 이름을 정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장로 세 명, 목사 두 명을 기본으로 교대로 인도한다.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은 ‘평신도 운동’이므로 목사는 협력만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쉼 없이 하고 있다.”


‘교회된 내가 뭘 해야 하는가’ 질문에
‘본질 찾는 방법 중 하나가 기도’ 깨달아


-추진력이 좋으시다.
“지난해 뉴저지교협 30회기이자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다. 회장 김종국 목사가 찾아와 총무를 제안했다. 김 목사와는 처음 만났지만 좋은 인연이 됐다. 지역을 섬기는 일이고 김 목사가 아버지학교에 참여하시면 하겠다고 했다.(웃음)
 
김 목사는 온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가 너무 좋더라. 김 목사의 어머니가 계시는 전라도 광주의 요양원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김 목사의 성장과정을 듣고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돌아오면서 성심성의껏 돕겠다고 생각했다.

부활절 연합예배로 좋은 평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통계를 내 봤는데, 상상도 못 한 일은  작은 교회의 참여도가 매우 높았다. 그때 이민목회는 작은 교회 목사들의 움직임이 중요하고 큰 힘이 될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합 기도운동은 언제까지 하나.
“정해진 건 없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날까지다. 장로들과 목사들이 협력하며 이어가고 있다.”

-한인교회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갈등은 무엇인가.
“장로들께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것은 사람을 세우신거구나’라고 느꼈다. 사람이, 교회된 내가 뭘 해야 하는가. 본질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기도라는 걸 깨달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며 진짜 개혁이 우리 안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구호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기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역사하시는 것이라는게 우리의 방향성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뉴욕에도 시작됐고 애틀랜타 쪽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필라에서도 자극 받아서 장로들을 통해 준비중인 것으로 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꾸준히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기도운동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기도회가 되길 바라는지.
“인도자로 하고 싶은 건…미국에 온지 13년차 인데 처음에 들어와 살면서 적응문제 등이 있었다. 미국 교회를 빌릴 상황도 아니고, 예배장소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공부를 하다 기도하러 가고 싶은데 오픈된 교회가 별로 없더라. 있어도 제한이 많고. 

그래서 우리 기도회는 이민자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공부하고 영적으로 갈증을 느낄 때 기도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녁시간에, 자유롭게, 여러 교회가 참여해 누구라도 기도할 수 있는 기도회가 됐으면 좋겠다.”

-2015년 7월, 목양교회 남봉우 목사와 연합한 계기는.
“남봉우 목사가 교회를 합쳐 목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힘든 상황에 있지 말고 같이 모이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서로 작은 교회 입장에서 볼 때 같이 하면 도울 수 있고, 힘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고 힘을 모으는 실제적인 예가 될 수 있어 연합하게 됐다. 

남 목사가 연합 제안을 하셨을 때 제 심경은 ‘우리 서로 손잡자’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저 손을 잡아 드리자’하는 생각이었다. 또 저에게 손을 잡자고 하신 마음이 고마웠다. ‘많은 교회들과 아시는 목사가 많으실텐데 하필이면 나인가?’하는 마음에 저와 우리교회를 연합의 대상으로 생각해주신 점이 정말 감동이었다. 우리교회 또한 어렵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인데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기회를 주신 것으로 봤다.

두 번째는 작은 교회 목회를 하다보니 우리 교인들보다 더 많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경험시키지 못하는 내모습을 봤다. 교인들에게 기회와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 

난 안정적일수 있는데 연합하는 것이 위기일 수도 있다. 새로운 장소로 옮기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야 되므로. 내가 위기를 느낀다고해서 교인들의 기회를 뺐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7월 마지막 주가 만 3년이 된다. 지금까지 공동담임을 했는데 7월부터 제가 담임목사를 맡고 교인들 합의에 의해 남 목사는 선교목사를 하기로 역할을 나눴다. 그래서 같이 한국 군선교와 베트남에 선교를 다녀왔다.

매월 첫째 주는 선교주일으로 남 목사가 설교를 하신다. 

 
 

청빙받아 온 교회가 쪼개져 새로 개척 
가족과 갈등 경험하며 가정에 관심


-‘두란노아버지학교’ 강사, ‘하나님의 가정학교 세미나’ 등 가정에 관심이 많으시다.
“2005년 미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육군 군목으로 20년 사역하다 소령으로 예편했다. 1월 31일 제대하고 2월 13일에 왔다. 

청빙받아 오니 청빙과 관계없이 교회가 쪼개져 있더라. 개척 상황이 됐다. 개척할 때 가장 힘든게 우리 가족이었다. 가족끼리 너무 힘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아내와, 자녀와 충돌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가장으로서 목사로서 방향을 못 잡았다.
   
그런데 21년 만에 여기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이민목회를 하려면 아버지학교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곧바로 아버지학교에 가서 은혜를 받았고, 은혜 받은대로 아버지학교에서 준 숙제를 했다. 혼자서 아버지학교를 했다. 집에서 실천한 것이다. 가정에서 해야 하는걸 실제로 해봤다. 힘들더라.

관심이 생기니 가정사역 세미나를 듣게 됐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관련 책을 읽고 세미나마다 참여하고, 섬기고, 봉사하면서 강사스쿨에 다니고 강사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아버지학교와 행복한 가정 세미나를 150회 진행했다. 중남부 지역에서 한인들이 있는 도시는 거의 다 가봤다.

하나님의 가정학교는 아버지학교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자고 생각했다. 섬기는 사역의 범위를 넓혀 보자는 측면으로 교회 안에서 만들었다. 2011년 사역하던 교회 자체로 시작했다. 또 ‘하나님의 가정학교 세미나’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섬겼다.

우리 교회는 매월 첫째주 ‘하나님의 가정학교’ 세미나를 연다. 교회 프로그램처럼 인식되어 여러가지가 제한적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가정학교’ 이름으로 소그룹에서 쓸 수 있는 교재를 집필 중인데 완성단계에 있다.” 

-활성화 계획이 있나.
“제가 은혜받고 현장에 다녀보니 많은 가정과 교인들이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한다. 여기에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있다. 자연스러운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의목양교회 성도 등 현황은. 
“주일 예배 참석자는 30명 내외다. 감사한 것은 두 목사에게 목회비가 지급되고 있다. 그러면서 선교도 하고. 큰 돈은 아니지만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저로서는 행복하고 감사하다. 

저는 이런 표현을 쓴다. ‘우리는 교인들 간에 마음의 벽을 열고 산다.’ 밥 먹으며 개인적인 얘기를 터놓고 나눈다. 하나님의 가정학교 효과라로 본다.”  

-교회 사역의 중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가정사역에 중점을 둔다. 2018년 교회 비전이 ‘살아가며 보이는 교회 되게 하소서’이다. 뜻은 어느날 깨달았는데 살아내려고 하니 더 힘들더라. 힘들이지 않고 하니까 이게 더 낫더라.

역설이지만 그래도 해야하지 않겠나. 해내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했으면 좋겠는데. 아들•아내•교인들에 대해 참느라 힘들었는데 어느날 참아지더라. '이게 살아가는 거구나'하고 이해가 됐다. 하나님께서 이땅의 우리에게 살아가도록 하는게 하나님의 최종 목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 흘러가듯이 하나님의 힘이 아니면 안 되겠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에 의지하자. 하나님이 하게 하셔서 한다." 

-두 분의 목회철학이 다르실텐데.
“목회의 방향 등은 사전에 공유한다. 목회 활동은 다른 게 없다. 당회에 같이 참여하고 목회도 동반하고.”

-설교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설교의 맥 이랄까. 내적치유에 관심을 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시적 천국의 형태는 결국 가정하고 교회다. 가정과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다. 교회든 가정이든 결국은 그 안에 있는 구성원을 평가한다. 말과 행동이다. 그 근본은 내면이다. 

설교는 항상 생각과 마음에 포커스를 맞춘다. 생각은 지식이지만 마음은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게 결국 은혜다. 내가 먼저 감동을 받고 깨달아야 내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 설교자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싶은 통로다. 

또 작은교회는 주일 예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가야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찬양•기도•설교 세 가지다.”


다시 교회 세우는 6개월간 가족도 고통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안되는구나’ 느껴


-목사란 무엇인가.
“자연인인 나는 하나님 앞에 똑같이 구원 받은 한 사람이다. 목자로 살아갈 때는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원하심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생각한다. 목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원하심을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인생에 패자부활전이 없다니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연단을 통해 쓰신다고 하는데…연단 속에서 나와야 된다. 연단 그 자체의 의미보다 연단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오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할 때…죽음에 대한 표현을 쓰는데 상대를 살리려면 내가 죽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 네가 살면 나도 사는데 우리는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려고 한다.
 
그래서 이런 표현을 쓴다. ‘이제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인생에선 없고 패자는 부활을 못한다. 하나님이 부활을 시켜줘야 한다. 

인생에서 패자면 주먹 쥐고 원한을 갚으려고 한다. 반전을 노리는데 패자는 일어나지 못 한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심을 기대할 때 일어설 수 있다.

억울한 일 당하고 패자였을 때 내가 일어서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교통하심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어느날 하게 하시는 때가 온다. 

미국에 온 후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전체적인 그래프가 주욱 올라가고 있다. 내 삶이, 가정도, 교회도. 여기에 행복감이 있다. 

사실 미국에 와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교회가 무너지고 6개월간 가족끼리만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교회 개척 후 교인이 50명 가까이 있었는데 교인의 가정 내 갈등으로 1년 반 만에 교회가 다시 무너졌다. 지금은 당시 교인을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아니, 목사를 불러놓고 너희가 나가면 되느냐’고 한다.(웃음) 

그 6개월이 가족까지 너무 아프게 했다. 그러다 한 가정이 우리 교회로 찾아왔다. 그게 동기가 되어 지금의 교회로 다시 일어섰다. 

그런 과정에서 패자부할전을 깨닫게 됐다. ‘하나님이 안 하시면 안 되는구나.’

그때 만든 말이 있다. ‘하나님 갈망합니다. 하나님 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인정합니다. 하나님 신뢰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인정합니다’ 속에 내 모든 상황, 사정, 당시 나락에 떨어진 것이 다 들어있다.  

그때는 입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은 자유로워졌나보다. 이 말이 안나오는게."(웃음)

 
1983년 겨울. 옥한흠 목사(오른쪽)와 만나 '평신도를 깨우다' 책을 선물 받고 제자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의교회는 서초동에 (구)예배당 건축을 완공한 때였었다. 장동신 목사는 당시 국제종교연구문제소(소장 탁명환)에 제직하면서 월간 현대종교 기자로 재직 중이었다.

이승우 기자 newyork@kukmin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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