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친일이라고 부르는 건 과장이고 왜곡”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 누구라도 맞히기 어렵다”
인터뷰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걸고 음식의 역사와 이면의 사회상을 전달해 주며 주목받았던 황교익(56)씨. 그는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친일파’ 논란에 이어 ‘검증되지 않은 지식으로 전문가 행세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 자랑하는 ‘불고기’라는 말이 일본어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요식업의 대가인 백종원씨가 출연한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백종원 저격’이라는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황씨를 지난 16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논란이 불거진 후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4시간 토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핫한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나?
“원래도 핫했다. 지금은 논란, 구설 이런 걸로 표현할 수 있겠다. 예전에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도 ‘좌빨’ ‘종북’ 프레임에 걸렸다. 그런데 지금은 ‘친일’이라고 한다. 내가 써 놓은 글과 말 안에 일본을 비유하고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맞다. 그 말 중에 솎아서 비추면 친일처럼 보인다. 내가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한 여러 말 중에 솎아서 보면 종북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편집해서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가, 왜 이럴까 그걸 들어보는 게 더 정확할 거다.
내가 한 말이나 글 중에 일본의 정치나 일본 극우주의자들 정치에 대해 찬성하거나 두둔한 건 하나도 없다. 당장 내 블로그 들어와서 일본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다. 단지 일본 음식과 한국 음식 비교만 했다. 그 비교가 불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걸로 친일이라고 부르는 건 과장이고 왜곡이다.
한국에서의 친일은 일제강점기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부역을 한 역사적 죄인을 의미한다. 친일인명사전도 만들어져 있다. 그 친일의 역사를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음식을 비교하고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한식의 발달사에 대해 얘기하는 걸 두고 친일이라고 하는 건 명백한 왜곡, 과장이다. 기분이 나쁘다 하더라도 일본에 대해 많은 말을 한다고 해서 친일이라는 말을 붙이면 안된다. 굉장히 위험하다.”
-일본 관련 언급을 최근에만 한 건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글쟁이들과 정치인들 글을 재조합해서 뭔가 교묘하게 짜면 다 친일분자를 만들 수 있다. 나와 비슷하게 친일 딱지를 붙일 수 있다. 어떻게 친일이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갖다 쓰나. 그건 진짜 친일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고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거다. 함부로 친일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
서로 논쟁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의견을 꺼내고 서로 토론하고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 중에 ‘너는 종북’ ‘너는 좌빨’ ‘너는 친일’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지 말라는 거다. 그럼 무슨 토론이 가능한가.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큰 적은 이런 딱지놀이다. 딱지놀이 이제 그만하자.”
황씨는 자신이 이렇게 비난받게 된 이유로 이재명 지사 관련 글을 한 편 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의 이른바 ‘형수 욕설’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 지사의 어려웠던 성장 배경과 가족 간 욕설 파문을 연관지은 글을 썼는데 이게 자신에 대한 비난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재명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이해 폭을 넓힐 필요는 있다는 정도의 글을 가지고 이재명 편으로 몰고 있다”고 했다.
-‘작전세력’까지 언급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나에게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작업이 시작된 초기에 그 말을 했다.(그는 지난달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서도 작전세력이 의심된다고 언급했다). 이건 이재명 경기지사와 관련이 있다. 난 이재명 지사 지지발언을 한 적도 없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한 적도 없는데 이재명 편이라고 하기 시작한 거다.
가만히 주위를 보니까 프레임을 짜서 갈라치기하는 게 보였다. ‘너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아니지? 이재명 편이지?’ 이런 거다. 이 지사를 만난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런 딱지를 붙여서 나에게 계속 ‘찢묻’(이 지사를 비하하는 말에다 이 지사와 가깝다는 의미를 결합한 비속어)이니 이럴까. 그런 댓글들이 ‘황교익 친일’이라는 말과 같이 섞여 돌아다니고 있다. 이건 대중의 정상적인 반응이나 감성은 아니다. 누군가 의도한 건 아닐까 의심하는 거다.”
-그렇게 느낄만한 근거가 있었나?
“의도를 가진 움직임이 있다는 걸 추론할 수 있는 건 많다. 네이버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하는데 갑자기 전혀 예견하지 못한 댓글들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의 경우 공감이 아무리 많아도 20~30개 정도 ‘좋아요’ ‘싫어요’ 정도고, 내 원래 글에 대한 반응도 100~200개 정도다. 그런데 최근엔 갑자기 댓글에만 100개가 넘는 반응들이 찍힌다. 페이스북을 5년 정도했는데 처음 있는 일이다.”
-발단은 최근 한 방송에 나온 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 비판이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프로그램이 사실 촉매 역할을 했다. 단순하다. 12종의 막걸리를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이 팩트 하나로도 비판할 수 있다. 왜? 시중에 팔리는 막걸리가 적어도 100종은 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 12종을 골라 이걸 맞혀보자는 게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 12종을 미리 선별해서 먹인 다음 ‘자 맛봤지? 이제 맞혀보자’ 이래도 못 맞힌다.”
-막걸릿집 사장을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비하하려는 장치였다고 보나?
“그 글 쓰고 난 다음 사람들이 말이 많아서 방송을 다시 봤다. 막걸릿집 사장은 달랑 2개 맞히는 걸로 자막도 같이 뜬다. 막걸리집 사장이 굴욕 당하는 걸로 화면에 묘사한다. 백종원씨는 몇 종을 마시는지 안 나오는데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강조돼서 나온다. ‘충청도 막걸리지…’ 하면서 마시는 장면인데 편집된 화면만 보면 백종원씨는 다 맞히는 것처럼….
실제로 그 방송 이후 나온 기사들을 보면 ‘백종원은 막걸리도 척척박사’ ‘백종원은 막걸리도 잘 알아요’ 이런 식이다. 예능이지만 ‘이거 심각하구나’ 느꼈다. 그래서 누구든 좋으니까 10종의 막걸리를 내가 가지고 갈테니 내기하자고 했다. 절대 못 맞힌다는 걸 자신한다.”
-무작위로 선정한 막걸리를 선별할 수 없나?
“못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 ‘신의 입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이 수십억명 중 한 명 있을지는 몰라도.”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일종의 컨설팅 성격이 있고, 제작진이 퀴즈를 제안한 것도 막걸릿집 사장이 고집을 버리고 좀 더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려는 것이었다는 반박도 있다.
“그렇지 않다. 방송에서도 막걸릿집 사장 막걸리를 마셔본 이들이 맛이 이상하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막걸리니까. 사람들이 보통 맛있다고 하는 포인트는 익숙함이다. 많이 먹어본 것이면 맛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있다. 아주 어색한 것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아스파탐이 들어간 막걸리를 많이 마신다.(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넣은 막걸리는 달짝지근한 맛을 낸다) 입국(전통누룩 대신 곰팡이를 직접 배양한 것)을 써서 맛도 균질화된 상태다. 그런 막걸리를 마시면 맛있다고 한다. (막걸릿집 사장 막걸리는) 정확하게 마셔보지 못했지만 표현하는 걸 보니까 일단 입국을 안 쓴다고 얘기하고 아스파탐 안 넣는다고 하더라. 그러면 맛이 기묘하다. 막걸리가 입에 착 안 붙는다. 약간 쓴맛도 나고. 처음 먹을 때는 ‘이게 맛있는 술인가’ 그런 느낌이 들지만 그 막걸리를 자꾸 먹게 되면 매력이 있다. 난 아스파탐이 들어간 막걸리는 되도록 피한다. 달짝지근함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만약 (방송에서) 막걸릿집 사장 막걸리를 익숙하지는 않지만 계속 맛있다고 하면서 ‘좋은 막걸리에요. 막걸리는 원래 이런 거에요. 아스파탐 들어가면 안되는 거고요. 원래 약간 씁쓰름한 맛이 나고요’ 이렇게 말을 붙이면 그것도 맛있는 막걸리가 된다. 인간은 원래 무엇이 맛있다 맛없다를 본능적으로 절대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미각을 가진 게 아니다. 말에 많이 넘어간다. 어떤 말을 붙여서 음식을 맛있게 했는가에 따라서 맛있어지기도 한다. 백종원씨는 대중들이 즐겨 마시고 익숙해져 있는 그 막걸리로 옮겨가게 한 거다. 그 정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게 맛있는 막걸리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내가 왜 아스파탐이 들어간 막걸리가 맛이 없다고 하냐면 같은 단맛인데도 아스파탐은 이상하게 단맛이 길게 느껴진다. 딱 끊어지는 단맛이 아니라 막걸리 마시고 난 다음에 그 단맛이 혀 뒤로 계속 남는다. 첫 잔은 단맛이 들어오니까 괜찮지만 계속 마시다보면 뒤로 갈수록 단맛이 좋지 않다. 막걸릿집 사장 막걸리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
황씨는 총 3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친일 논란’ ‘불고기 어원 논쟁’ ‘백종원씨 저격 논란’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국민일보는 장시간 계속된 인터뷰 분량을 감안해 이를 3회로 나눠 소개할 예정입니다.
고양=백상진 정지용 기자, 영상=김지애 기자, 고은비 인턴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