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어로 불리는 날은// 조금 더 이방인 같다. 단어와 단어, 얼굴과 얼굴, 모국과 조국 사이에서 자주 체한다…"('이민자' 중에서)
2014년 '문학과 의식' 신인상을 차지하며 등단한 재미 시인 이훤이 두 번째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를 냈다. 그는 데뷔 당시 감각적인 시어(詩語)와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주목받았지만 미국 조지아공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더 화제를 모았다.
시인동네의 100번째 시인선으로 출간된 이 시집은 2년 전의 첫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문학의 전당 간)보다 한층 정제된 언어와 깊은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선생님 모국어와 이국어를 섞어가며 시를 쓰고 싶어요 문법을 버리고 싶어요/ 서사를 버리고 싶어요 선생님 선생을 버리고 싶어요…"('통조림' 중에서)라든가 "이 방에는 이방인 둘이 살아요/ 돌아오는 소식을 함께 뜯어요 반송되는 표정도 있지만…"('사이의 사이' 중에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방인으로서의 혼돈과 부적응은 여전한 듯하다.
"What is your last name?/ 마지막 이름은 갖지 못했다"라고 시작되는 '출국2'는 공항 출입국장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는 'How long are you staying in this country?/ 아직 아무 곳에도 우리는 도착한 적이 없다"라고 끝맺는다.
그의 시가 경계인으로서의 삶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너무…'에서는 "손톱만 잘랐는데 구름이 모조리 사라진 걸 알아챘을 때/ 당직 순서가 폭력처럼 느껴질 때/ 연녹색이 달콤에 실패했을 때/ 우리 너무 자주 절박해지지 말아요"라며 목표만 좇는 세태를 꼬집는다.
'에 대해, 에 대해'나 'Poe-try'에서는 시인으로서의 고뇌를 노래하면서도 포토그래퍼'에서는 사진가, '데이터 노동자'에서는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직업적 일상을 묘사한다.
우리말 번역을 붙이지 않은 영시 '?-Dear Alex'도 있고 자신이 찍은 사진 '한 사람의 밤이 지나가는 광경'과 '구름을 짓는 사람'도 곁들였다. 현재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