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풍랑 헤친 이민목회 37년·성역 47년 송병기목사의 아름다운 은퇴

미주국민일보-국민문화재단 공동기획
<목회자 탐방> 거센 풍랑 헤친 이민목회 37년·성역 47년 송병기목사의 아름다운 은퇴​



18일(주일) 목양장로교회서 500여 하객 축하… 제2대 허신국 담임목사 취임식 거행
 
목양장로교회를 개척한 송병기목사가 지난 18일 은퇴했다. 37년 목양장로교회와 역사를 함께 한 송병기목사는 성역47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무일푼인 시절, 복음에 대한 열정만 갖고 시작한 사역자의 길이 어느덧 47년을 흘렀습니다. 반세기 가까운 기간, 공식적인 사역을 잘 마무리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끝까지 잘 따라준 목양장로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더불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역의 동반자로 또 다른 측면에서 목양의 역할을 감당해준 제 아내 안춘희 사모에게도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18일 자신이 개척한 목양장로교회에서 은퇴예배를 드리고, 후임자 허신국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이임한 송병기목사는 37년 뉴욕 이민목회를 ‘은혜와 감사의 시간’으로 정리했다. 

가난과 싸우다 부딪힌 충격 ‘첫 자녀, 쌍둥이의 죽음’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송병기목사는 시골마을 복음화를 가슴에 새기며 당시 새롭게 시작한 예비고사를 겨냥해 열심히 공부했다. 실패하면 난방공사 일을 하며 당했던 멸시를 또 받게 될 것을 알았던 그였다.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던 송목사는 공부집중을 위해 청주의 한 사찰로 들어갔다고 했다.

목표를 세운 청년 송병기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결과는 9등 합격. 연세대 신학과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던 때에 걸린 간 질환으로 하마터면 죽음까지 겪었을 군대시절, 한 상관의 배려로 치료받아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의 합격이었다.
 
송병기목사의 첫 목회지는 난지도였다. 빈민들의 집성촌에서 송목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며, 슬픔과 충격을 인내로 버텨야 했다고 했다. 허물어질듯한 사택(좌)과 주일학교.


첫 목회지는 가난과 싸우던 5년간의 난지도 사역
꿈많은 신혼은 눈물로 가득…쌍둥이 잃은 충격 커
애타게 부르짖던 기도사역 연속 “사모가 버팀목 돼”


신학생이 된 송병기목사는 당시 출석하던 잔다리교회(현 서교동교회/통합측)가 총회의 10,000 교회운동에 참여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의 집성촌 ‘난지도’를 그의 첫 목회지로 정하게 된다. 교회를 시작하면 잘 될 줄 알았다. 복음의 능력이 난지도를 덮을 줄 알았다. 75년 4월 현재 사모 안춘희 양과 중매 한 달 반 만에 결혼식을 올린 신학생 송병기는, 그 이후 가난을 견뎌야 했고 난지도 아이들의 놀림도 인내해야 했다. 목회는 현실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부르짖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신혼초기의 목회였다. 

그러던 어느날, 임신중인 사모의 몸이 부어오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당시엔 너무나도 무서웠던 임신중독.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여서 간절함은 더했다. 가난 가운데 신학공부를 붙들며 부르짖는 가운데 사모의 임신중독은 커다란 시련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날 송병기목사 은퇴 및 허신국목사 취임예식에는 500여 목회자와 성도 등을 포함 사모합창단, 밀알선교합창단, 뉴욕장로성가단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앞줄 가운데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송병기목사 일가.


8개월 만에 나온 쌍둥이. 고통 가운데 출산한 그 사랑스런 쌍둥이는 이내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지금은 뉴욕에서 아름다운 성전을 갖고 안정된 목회를 하는 송병기목사의 목회출발은 사실 첫 자녀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몸부림이었고, 가난과 부르짖음의 연속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큰 사역의 그림판 ‘뉴욕’

1982년 5월은 송병기목사가 뉴욕에 도착한 달이다. 37년하고 3개월 전이다. 난지도 목회 5년을 보내고 경신학교 교목으로 5년을 사역했으니 송병기목사의 성역기간은 햇수로만 47년이다. 반세기 가까운 기간을 말씀사역과 복음전도로만 산 것이다.

송목사의 두 누님이 이미 간호사로 뉴저지에 정착해 있어 송목사 가족의 이민은 순탄했다. 비행기값을 아끼려 홀트아동복지를 통해 입양아를 안고 갔다. 송목사가 현재 입양아권리회복운동을 벌이는 월드허그파운데이션(WHF) 목회자후원회 대표회장을 맡고 있으니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영어 못해 개척한 교회 통해 복음 뿌려져 감사
지금은 다인종사역 시대…한인교회 큰 그림 그려야
“절망 중 부르짖는 변곡점 겪어야 신앙부흥 경험”

 
이날 송병기목사는 은퇴식이 끝나자 가족소개 시간에 어머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며 큰 절을 올려 하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처음 뉴저지로 들어간 송목사는, 난지도 목회와 경신학교 교목 등 탄탄한 사역경험이 이민목회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꿈에 부풀며 청빙원서를 넣은 송목사는 꿈이 큰 만큼 좌절의 큰 나락을 맛보아야 했다. “영어를 못하시니 우리 교회에는 맞지 않습니다.” 송목사의 이민목회 개척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영어못하는 목사’라는 말을 적극 수용했다고 했다. 미국지역 명칭을 붙인 교회이름 대신 순수한국말로 ‘목양장로교회’로 이름짓고, 교회 안에서는 누구든지 한국말만 쓰도록 규칙을 정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영어를 쓰면, 야단치며 한국말 사용을 강조했다. 

교회를 개척한 매년 3월 첫주에는 삼일운동을 기념한 예배를 드리며 애국가 제창과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등 애국예배로 드려왔다.  100% 한국인으로, 100% 영어권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처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민성도들은 시간이 가며 크게 환영했다.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한국말만 고집 못할 상황이더군요. 영어도 병행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회는 목회자의 신앙철학이 중요하지만, 환경의 변화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어권 사역, 다인종사역으로 뻗어나가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한인 이민교회가 과거엔 한인복음화에 주력했다면 이젠 다민족사역의 중추역할을 감당해야 하기에 영어권사역을 되레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유대인 회당을 개조해 목양장로교회로 옮긴 지 3여 년. 은행 모기지 없는 탄탄한 교회당을 후임자에게 전하며 앞으로 큰 부흥을 위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측)송병기목사 안춘희 사모 그리고 후임 허신국목사와 진명화 사모
 
목양장로교회 제2대 담임 허신국목사는 "송병기 원로목사님을 아버님처럼 모시며 복음을 전파하고 성도들을 섬기는 목양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제2대 담임 허신국목사를 향한 원로의 마음

지난 18일 송병기목사 은퇴예배와 제2대 담임 허신국목사 취임예배는 모든 교회가 부러워할 아름다운 리더십 교체였다는 평이다. 송병기 목사는 은퇴예배 직전인 12일 만난 자리에서 후임 허신국목사를 포함한 모든 젊은 사역자들에게 몇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목회사역의 첫 시작은 ‘절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찬이 만난 ‘절망의 구덩이’를 예로 들며, 자신의 난지도 이야기, 쌍둥이 자녀의 죽음 등 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사역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해석까지 곁들였다.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날 예식에는 뉴욕지역 주요기관장 단체장을 포함해 목회자들이 참석해 목양장로교회의 앞 날을 축복했다. 


두 번째로, 절망을 깨달으면 당장 부르짖기 시작하라고 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만 신뢰하는 목회자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믿자고 했다. 목회의 능력은 현대의 고차원적 학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뢰에서 나옴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은 인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부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자고 했다. 이것을 송병기목사는 ‘신앙의 변곡점’으로 압축했다.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질적인 변화의 최고지점이다. 송목사 자신도 욥기 23장10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겼다고 말한다. 

송목사는 금년 사역에 대해 △국제사랑선교회 주관 중국 방문(9월) △그리스 한인교회 연속집회(10월) △인도원주민 사역자 대상 교회론 강의(11월) 등 연말까지 빼곡한 일정을 설명했다. 또 한국의 섬 선교회를 따라 대한민국 해안의 수많은 도서에 복음을 전한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윤영호 기자  yyh6057@kukmin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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