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지용목사의 사순절 신앙고백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① 광야에 대하여

“광야는 자아가 죽는 ‘죽음을 경험’하는 장소…하나님 만나는 생명의 장소요 희망의 장소”
 
40일동안 금식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은 광야의 일반적인 전경.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죽음이라는 게 이지용목사가 말하는 광야의 신앙적 의미다. 


‘재의 수요일’인 지난달 26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됐다. 전통적으로 중세 가톨릭 시대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종교적 형식으로 진행된 사순절은, 종교개혁시대를 지나 현대 시대로 접어들면서 종교적 형식보다는 신앙의 본질에 무게를 둔 ‘경건성’에 의미를 두고 진행된다. 이에 사순절을 앞두고 최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 이지용목사(뉴욕겟세마네교회 담임)를 통해 성지순례에서 느낀 신앙고백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를 ① 광야에 대하여 ② 갈릴리에 대하여 ③ 예루살렘에 대하여 순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스라엘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첫째가 광야이고 둘째가 갈릴리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예루살렘입니다. 이 세 지역은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핵심지역으로, 위의 세 지역을 꼭 집어서 들어 올리면 이스라엘 전체가 한꺼번에 들려 올려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서 이 세 지역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이 세 지역에 대한 이해를 전제합니다. 예수님 사역의 주무대가 광야, 갈릴리,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26일부터 2월8일까지 일정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온 이지용목사는 성도의 신앙여정에도 광야-갈릴리-예루살렘이라는 신앙적 여정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광야 · 갈릴리 · 예루살렘 세 부분이 핵심
성도의 신앙 여정 속에도 세 부분의 동일한 여정 나타나
마귀의 시험 능히 이기신 예수님 … 우리에게도 승리 보장


공생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도착한 장소가 광야라는 사실은 광야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 성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는 이곳 광야에서 40일 동안이나 금식하며 세 차례나 유혹하는 마귀의 시험을 능히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세 개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광야가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의 출발점이라면, 갈릴리는 사역의 중심지였으며 또 제자를 양육한 장소였습니다.
 
광야에서 멀리 사해를 바라본 전경. 
 
거친 흙과 바위들이 뒤엉긴 광야는 인생의 거친 삶을 투영하는 듯하다. 


마지막은 예루살렘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시고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구속과 부활이 실재 일어난 장소이며, 장차 있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약속한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광야는 모든 인생들의 피할 수 없는 시험의 공간

우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 이하에 보면, 40일 금식하시고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는데 돌덩어리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욕망을 채우는 이적과 기적의 유혹)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거룩한 성 성전꼭대기에 오르게 하여 뛰어내려 보아라(영적 교만의 유혹)고 하며 그러면 천사들이 다치지 않도록 받쳐 주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지극히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물질과 사상의 유혹)고 한 유혹입니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광야와 갈릴리, 예루살렘이라는 큰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지리적 환경을 보면, 연간 강수량이 300mm 이하입니다. 강수량이 300mm이상이면 광야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광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목축입니다. 조그만 풀들이 자라기에 목축업만 됩니다. 물이 턱없이 부족하여 농업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남쪽 유대광야의 동쪽에 있는 마사다의 흔적. 뒷 배경 멀리 사해동편이 보인다. AD.70년경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후 3년 동안 로마군대와 항거한 이스라엘 무장투쟁 장소로, 결사항전을 하다가 결국 모두가 자결했다. 
 
마사다 모형도.


이곳 광야에서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을 유목민이라고 하는데, 이 유목민들은 비가 부족한 이곳 광야에서 살기 위해 지하수가 터질 때까지 땅을 파야만 합니다. 샘물이 터진 뒤 이들은 광야에서 정착하곤 합니다. 

광야는 인간은 ‘최소’가 되고 하나님은 ‘최대’가 되는 곳

광야는 인간의 능력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니 아예 발휘할 수가 없는 장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힘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따라서 광야는 인간이 최소(Minimum)가 되고, 반면에 하나님은 최대(Maximum)가 되는 역전의 장소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광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셔야만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만 했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상징

광야는 하나님 말씀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이런 광야에서 시편 23편을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광야는 하나님께 특별히 주목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자신만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낮에는 구름기둥을 따르게 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보내 그것을 따라가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고 교육할 목적으로 광야의 삶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광야는 죽음이 임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자아가 죽고, 세상과 이별하는 곳이란 뜻의 죽음입니다. 스스로는 살아 남을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죽고, 세상에 대하여 죽은 인생은 하늘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말씀이 임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입니다.

결국 광야는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

그러기 때문에 광야는 희망의 땅입니다. 광야의 땅 아래 물이 흐르듯이, 가끔 오아시스가 있어서 그 그늘에서 쉬어가기도 하는 곳입니다.생수이신 예수님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 광야는 희망이 있는 곳이요 오아시스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늘 되신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을 소망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할렐루야! / 뉴욕겟세마네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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