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교회론 - 선교적 교회
지역사회에 대한 교회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다. 안정과 성장에 치중하던 목회철학이 반성국면을 맞은 가운데 교회 공동체가 지역공동체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가 열리는 추세다. 해외선교가 중단됐던 팬데믹 상황을 지나며 교회주변의 이웃들도 선교대상이라는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미국같은 이민사회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 난민과 유학생, 지체장애인과 고아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교회의 선교적 접근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오랫동안 유학생과 난민사역에 집중해 온 시라큐스한인교회 지용주 담임목사의 글 ‘이웃에 와 있는 열방을 섬겨라’ 시리즈를 통해 선교적 교회의 모델을 살펴본다. 지용주목사는 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공동의장으로, 오는 7월11일부터 와싱턴중앙교회에서 열리는 제9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서 강사로 나선다. <편집자 주>
이웃에 이미 와 있는 열방을 섬겨라 <4>
- 선교적 교회와 선교적 삶 -
지용주 목사 (시라큐스 한인교회 담임)
선교적 교회라고 하면 선교를 위해 무엇인가를 새롭게 조직하고 준비하고 특별히 이루어가야 할 프로그램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적 교회라는 말 자체는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당연히 이루어가야 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이를 자각하고 본질과 본 목적을 회복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성경적 교회는 선교적 교회입니다. 요한복음 17:18-23의 말씀에서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하는 중요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이를 회복해가야 합니다.
선교적 교회의 특징과 중요성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요 20:21). 그래서 선교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 구원’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선교사들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기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세상으로 ‘파송받은’ 하나님의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건물 안에서 잘 모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선교 프로그램이나 선교적 활동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성도 일부가 선교에 헌신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회 전체가, 교회의 중심이 선교적 사명을 이루어감으로써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각 성도는 교회 밖에서의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도 그 선교적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교회의 여러 사역 중 하나의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교적 교회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냄받은 공동체로서 세상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일들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그 크기를 확장해가고 큰 일을 해내고자 애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가 움직이는 데 민첩하고, 빠른 결정과 즉각적인 반응을 이룰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각 교회와 개인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일들을 가장 크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라큐스 한인교회는 교인이 12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나마 그 중의 반은 학생들이어서 학업을 마치면 떠나기 때문에 여러가지 사역들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는 재정 없이 한해 한해 주어진대로 사용하고 또 한해를 맞이하는 그런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번도 사람이 없어서, 재정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교적 교회로서 우리의 교회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개개인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교회 밖으로 나아가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
선교적 교회는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즉 믿는 우리끼리 모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우리의 이웃, 지역사회와 친밀한 사랑과 섬김의 관계를 맺어 가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교회와 가정이 위치한 지역 사회와 학교 등 우리의 삶의 터전들이 중요한 선교의 현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적 교회는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로 나아가 사랑의 섬김을 이루어가야 하며, 지역 교회간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의 사명을 확장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내 교회 교인 수를 증가시키고, 교회 면적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그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명령이기 때문에 이 명령에 순종하는 교회들은 서로 연합을 이루고, 함께 사역의 열매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시라큐스 한인교회는 지난 2007년부터 이 지역에 와 있는 난민들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친구가 되어주는 보아즈 프로젝트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시라큐스가 미국에 들어온 난민들이 정착하는 주요 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난민 인구가 시라큐스 도시 내의 인구의 약 10%를 차지합니다. 특별히 시라큐스의 로다이 거리 (Lodi Street)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는 60여개국에서 온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시라큐스에 난민이 많이 정착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지난 1900년대 중반부터 뉴욕 업스테이트 (upstate) 지역의 산업들이 쇠락해가면서 이 지역의 인구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로 인해 사회 경제 상황도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난민들을 수용하여 주택과 일자리, 그리고 영어 교육 등 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이들이 지역 사회 경제 및 산업 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지역 사회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정책을 펼쳐갔고, 따라서 이 지역에 많은 난민들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60여개국의 대부분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심하여 복음을 전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들입니다. 그들이 이 땅 미국에, 그리고 우리 지역 시라큐스에 와 있다는 것은 자유로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였습니다. 난민 친구들을 교회로 초대하여 그들에게 컴퓨터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Clothing Drive나 Picnic과 같은 행사를 통해 함께 친구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들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그들이 살고 있는 로다이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허물어져가는 건물들, 지저분한 거리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어린 아이들, 익숙하지 않은 이국 땅에 건너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막막한 많은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멍하니 계단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지역으로 나아가 그곳에서 지난 2010년부터 난민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성경학교, Lodi Summer Camp를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150여명의 어린이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해마다 100여명의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어린이들을 통해 그 가정에 복음이 전해지고, 그 어린이들의 손에 이끌려 부모들이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밴이 그 거리를 지나갈 때면 어디선가 우리를 만났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밴을 따라옵니다. 너무도 밝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합니다. 그들이 아직은 복음을 다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라큐스 한인교회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거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함께 비전을 나누며 함께 기도했던 이웃 교회를 통해서도 이루어 가셨습니다. 말씀 사역을 함께 이루어오면서 동역을 하게 된 Ithaca 지역의 코넬한인교회는 그간 우리 교회를 통해 펼쳐졌던 Lodi Summer Camp 사역을 함께 나누고 동참하게 되면서 지난 2017년, 난민이 거주하는 또다른 지역, 유티카 (Utica)의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Summer Camp를 펼쳤습니다. Utica에 많이 거주하고 있던 미얀마 카렌족을 비롯한 여러 난민 친구들에게 나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확장되어 가는 그 감격 가운데 우리도 함께 동참하여 귀한 은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9년에는 우리 교회의 사역을 늘 관심있게 보았던 같은 노회 소속의 the First United Church of Fulton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Fulton은 시라큐스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께서 다민족이 살고 있는 그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하던 중 각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미국 교회들이 그러하듯 Fulton 교회 역시 교인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노년층이었고, 40여명의 교인만으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노회를 통해 우리 교회 사역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목사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떠올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와서 그 지역을 위해 여름성경학교를 열어달라는 요청하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꿈속에 나타나 “이곳으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고 했던 마게도냐 사람의 음성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 요청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Fulton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함께 여름성경학교를 열었습니다.
선교는 꼭 해외 또는 먼 지역으로 가서만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 미국 땅에 살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미국 교회들, 신앙을 잃어버린 이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또한 선교입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곳이 선교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요 10:16)라고 말씀하시며, 교회 안에 머물러 있던 우리의 눈을 돌려, 그곳에 흩어져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도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께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회된 목적입니다. 이것이 선교적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선교적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선교적 삶
토론토영락교회 송민호 담임목사는 선교적 삶에 대해 "선교적 교회는 교회가 선교적으로 이론이 잘 잡혀있고 원리를 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결국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이 각자의 삶에서 매일 선교적인 삶을 살면서 흩어졌을 때 선교적 교회이고,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선교적 교회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이루어갈 때, 교회에 속한 성도 개개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복음의 사명을 자각하게 되며, 일상에서 그 사명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선교적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일상의 삶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6:33). 더 깊이 살펴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기 때문에 선교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도직인 선교적 의무가 교회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개개인에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직장, 학교 등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감으로써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선교적 사명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으로 보냄받은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선교적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선교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선교적 삶을 살수 있도록 오랜 기간 훈련을 이루어 갔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하고 가르침으로써 자신을 비워 일상에서 말씀대로 살아내는 연습을 하도록 훈련하였습니다. 특별히 자신을 비워 일상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은 ‘하나님을 경험 하는 삶”을 통해 순종과 섬김의 도를 배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통한 순종과 섬김
핸리 블랙가비 목사님과 클로드 킹 목사님이 저술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보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일곱가지 실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주위에서 일하고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실질적이고 개인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의 일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목적들과 길들을 보여주시기 위해, 성령님에 의해 성경 말씀과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우리를 믿음의 갈등에 처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결단과 그에 따른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심으로써 우리는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이러한 삶의 원리를 배우고 훈련받은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비전과 사명을 함께 나누고 각자의 역할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시작된 난민 사역, 선교를 통해 교인들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도 선교적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 때부터 함께 동참하여 난민들을 섬겼던 우리 교회 장로님들께서는 난민 사역을 하면서 난민 친구들의 환경과 필요를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도하며 마침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생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건축가로 일을 하다가 이곳 시라큐스로 이주를 해온 우리 교회 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곳에 온 이후로는 의류매장 관리자로 일을 하던 중에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난민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고, 난민들의 실생활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난민을 향한 비전과 사명을 깨닫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난민들과 그들의 주거지역 개선을 위한 기업, 'Building the Bridge USA'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Building The Bridge USA는 시라큐스에 온 난민들이 주거 공간 뿐 아니라 상업공간 및 공공 공간 등 거주하는 공간들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나아가 그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훈련하며, 이를 통해 이 지역의 회복과 발전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업입니다. 이러한 돌봄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해가면서 함께 나누었던 그분의 고백이 있습니다.
“10여년 전, 교회(시라큐스 한인교회)에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성도의 삶’에 대한 말씀이 선포가 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의미를 알지 못하던 제게 하나님께서는 ‘제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작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친히 행하시고 계신 Boaz 사역을 통해 한 난민 가정의 ‘부서진 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문은 수많은 집들의 셀 수 없는 망가진 부분 중 하나 일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문을 크고 뚜렷이 제 마음에 담아 주시며 ‘이들이 좋은 주거 환경에서 살도록 돕는 것이 어떨까?’라는 작은 소망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 밀려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중, 이 소망이 잊혀지는 듯 하던 2015년 겨울 어느날, 담임 목사님께서 제게 ‘그곳으로 나갑시다. 그 지역을 변화시킵시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저로 하여금 ‘그 부서진 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이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며 사명이라는 확신과 함께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그후 하나님께서는 2016년 11월 회사를 설립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삶을 결단하고 조정하는 시간을 지나게 하셨고, 지난 2020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최근 구입한 건물 옆 건물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그곳 주인은 예멘에서 왔습니다. 처음 이곳에 건물을 마련하였을 때 자주 마주치면서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분이 제게 다가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너 Christian 이니?’, 그리고는 ‘네가 다니는 교회에 내가 한번 가봐도 되겠니?’ 제가 언제든 환영한다고 하자, 이어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내 안에 맺히고 막힌 어떠한 것을 풀어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이상하게 네 회사 이름의 the Bridge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이 났고, 네가 왠지 나를 도와줄 ‘문’이 되어줄 것 같다’
그의 고백은 어떠한 상황에도 이 일은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는 하나님께서 들려 주시는 확신의 말씀이었고 감사와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이러한 이웃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내가 이 지역을 품고 기도하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구원의 열린 문이 되는 Building the Bridge USA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오랫동안 Beauty supplies 일을 해오셨던 한 장로님은 미국에 체류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그 과정 중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기도 하셨고, 가족들과 떨어져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점차 생활이 안정적이 되어가던 중 교회를 통해 선포된 성경공부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민 사역을 통해 난민들을 향한 마음을 갖고 기도하던 중,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업, 'The Helping Hand'를 시작했습니다.
The Helping Hand는 청소용역 회사로써, 언어의 장벽과 숙련된 기술이 부족한 난민들에게 청소를 통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나눌 수 있도록 세워진 기업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삶 가운데서 이루어가시며 장로님은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난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그 친구들이 언어 때문에, 미국의 직업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때문에, 여러가지 차별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어와 고 난이도의 기술이 요구되지 않으면서도 미국 사회에 점진적으로 적응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stepping stone이 필요함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난민 복음 사명을 지속하고 그들의 영혼과 삶이 회복되길 소망하며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예상치 못하게 다른 지역의 교회에서 시라큐스 한인 교회에 청소 사업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고 이 일이 난민들과 함께 일하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며 뜻을 함께한 교회의 지체들과 함께 회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갑자기 주어진 일들과 회사의 시스템을 세워가는데 치중되었지만 내가 모르는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사업과 사업, 그리고 난민 커뮤니티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셨고, 이를 깨달았을 때, 우리 모두는 우리의 노력이 아닌 모든 상황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함께하는 난민 친구들이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임금 지불 및 여러 혜택과 모든 사항들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이루어갈 것입니다. 이 회사가 지역사회 여러 단체들과 원활한 관계를 이루어감으로써 난민 친구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계속해서 창출해가고, 난민 친구들에게 필요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도록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흔히 선교는 부름받은 특별한 누군가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해 이루어가야 할 사명입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의 교회와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명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 밖으로 나아가야 하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금 내가 있는 그곳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이웃에 “난민”이라는 열방이 와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열방에서 온 이웃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난민들은 소외되고 연약한 이 땅의 나그네, 이방인입니다. 작은 자들입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9)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라"(마 10:42)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난민 친구들을 정치 사회적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선교적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난민들이 불쌍하고 어려워서 이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열방, 땅끝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역을 해야 합니다. 땅끝까지 가서 만나야 할 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미국 땅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한인 교회를 세워주신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각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바로 먼저 복음의 빛을 받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와 있는 열방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된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도 이 사명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손길을 통해 전했던 하나님의 위로가 그들에게 놀라운 평안과 기쁨으로 남기를, 그리고 그들의 삶 가운데 참 위로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되시기를,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기를 기도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