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박재찬] 미투, 100년 인생의 교훈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 이쯤 되면 스캔들을 피하기 힘든 조건이다. 금전, 성적인 문제로 입방아에 오르는 이들 중엔 이런 환경 속에서 실족한 이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열정적인 언변과 넘치는 카리스마, 집회 때마다 구름떼 청중을 몰고 다니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간의 시선은 집중됐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 찰턴 헤스턴을 닮은 그를 붙잡으려고 영화와 방송계도 안달이었다. 그는 미국과 전 세계를 누비면서 많게는 백만명 넘는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100년을 살다 간 그에게서 돈·여자 문제 같은 스캔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달 천국으로 향한 빌리 그레이엄(1918∼2018) 목사 얘기다.

그레이엄은 스캔들 없는 사역을 위해 평생 분투한 인물로 꼽힌다. 1950년 서른 두 살의 그레이엄은 자신의 전도 사역팀인 빌리그레이엄복음전도협회(BGEA)가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모데스토 선언(Modesto Manifesto)’으로 불리는 일종의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빌리 그레이엄 룰’로 더 잘 알려진 4가지 강령(정직·청렴·성결·겸손)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성결 부분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다른 여성과 단 둘이 함께 있어선 안 된다. 사역팀원들의 아내들에게 수시로 활동 상황을 알린다. 그리고 아내들이 사역팀 일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강령이 탄생한 배경은 이렇다. 당시 그레이엄 같은 순회 전도자 사역팀원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환경은 성적 유혹의 빌미를 제공했다. 집회에 참가한 여성과 사역팀원 간 스캔들이 종종 터졌고, 이는 순회 전도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이어졌다. 복음 전파에도 치명적이었다.

강령은 문제 예방을 위한 그레이엄의 다짐이자 결단이었다.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지침이 나온 데는 근본주의 성향이 짙은 장로교 집안 내력과 그레이엄이 받았던 철저한 신앙교육과도 무관치 않다. 그 밑바닥엔 완악하고 연약하며,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자각이 자리 잡고 있다. 십자가 복음 없이는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레이엄의 스캔들 없는 인생길 한쪽엔 가족이 있다. 언젠가 그의 지인이 물었다. 전도 집회로 출장과 외박이 잦으면 이런 저런 유혹도 많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나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족사진을 놔둡니다. 떨어져 있지만 가족들이 늘 저를 지켜보고 있는 셈이죠.”

3년 전쯤 그레이엄의 장남 프랭클린 목사가 아버지 책상을 사진에 담아 공개한 적이 있다. 그의 수많은 설교가 그 책상에서 탄생됐는데, 당시 그레이엄은 책상에 앉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눈길을 끄는 건 책상 주변으로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2007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루스를 비롯해 자녀들과 함께한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긴 세월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낸데 대한 미안함과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에 대한 책임감, 생이 끝날 때까지 가족과 함께하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캠페인을 넘어섰다.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 문화까지 바꿔놓고 있으니 사회변혁 운동으로 흐르고 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위드유 운동’까지 가세하면서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부에선 ‘펜스 룰’이라도 따라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서 식사하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과거 발언으로 생긴 용어인데, 시작은 빌리 그레이엄 룰에서 비롯됐다.

미투 피해자들의 힘겨운 고백과 가해자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마주하면서 문득 ‘나와 가족이 양쪽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곤 한다. 미투·위드유 운동으로 세상은 나아질 것이다. 이것저것 지켜야 할 룰도 많아질 것 같다. 그 가운데 100년 인생 그레이엄이 건네는 삶의 지혜를 늘 되새기면 좋겠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임을, 가족이 인생의 힘이라는 걸.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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