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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래도 이겨냈어야죠”



좋은 사람을 잃었다. 노회찬 의원이 허망하게 갔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그가 이 사회의 연약한 자들을 대변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삶으로 살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진보의 대중적 아이콘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사람들과 쉽게 친할 수 없었던 진보정치를 대중과 마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존경과 외경, 더불어 친밀함도 함께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대한 찬가가 나왔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일화들도 나왔다. 그와의 인연과 만남이 사진과 이야기로 쏟아졌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대중은 점점 더 슬픔에 빠져들었다.

방송은 그의 죽음에 관한 것들로 채워졌다. 그가 죽은 장소와 방법, 구체적인 행적과 죽음 이후의 장면들까지 여과 없이 전달됐다. 장례식장 현장은 생중계로 전파를 탔다. 오열하는 지인들의 모습,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치인들과 대중적 인물들이 서로 위로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나 자신도 감정이 이입되는 걸 느꼈다. 그가 좋은 정치인이라 생각했고 호감을 갖고 있었다. 좋아했던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흥미를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꽤 많았던 것 같다.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수만명을 헤아린다.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2009년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때 나타났던 추모문화가 되살아난 것 같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노 의원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때 우리가 경험했던 모습은 지금보다 더했다. 물론 사회·정치적 환경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금기시돼 온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자살 열풍’을 맞았다. 그 전해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6명이었다. 그런데 그해에는 31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누구도 그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충격적 사건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인이 자살한 뒤 ‘모방 자살’이 나타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 단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05년 배우 이은주의 자살 때문이었다. 그해 자살자 수가 전년 대비 495명 증가했다. 배우 최진실이 죽었을 때는 1000명 넘게 증가했다. 우리 사회가 베르테르 효과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오스트리아는 1980년대까지 전 세계 자살률 3위에 오른 나라였다. 오스트리아인들은 대중에게 자살 사건을 전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실제로 자살에 대한 기사가 1면에 실릴 경우, 기사의 수가 늘어날 경우, 제목이 자극적일 경우 자살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부와 언론은 언론 보도에서 자살에 대한 기사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 이후 6개월 만에 자살률이 80%나 감소했다. 한 오스트리아 학생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생각나는 자살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그토록 노력한 결과 자살이 현저히 줄어들어 많은 사람을 살렸다.

생명은 절대적 가치다. 예수님께선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다.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게 신앙이고 기독교적 가치다. 자살을 예방한다는 것은 어느 누가 아니라 이 사회 모두의 노력과 연대를 통해 이뤄진다.

정치인의 자살에 이렇게 한마디 붙인다는 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하지만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기에 노파심을 드러낸다. ‘노회찬 의원님, 사셨던 모습처럼 당차게 죽음을 이겨내시지 그랬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존경할 수 있는 어른으로 남지 그랬습니까. 그랬으면 우리가 이토록 슬퍼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랬으면 우리가 어떻게든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을 텐데 말입니다.’

조성돈 대표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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