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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남도영] 댓글은 죄가 없다



직업 특성상 뉴스에 달린 댓글을 자주 보는 편이다. 가끔 무릎을 칠 만큼 기가 막힌 댓글을 본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까’라는 감탄과 ‘기자보다 낫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물론 ‘이번 댓글은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감이 오는 경우도 많다. 기사 내용과 상관없는 세력이나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욕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댓글을 볼 때다.

댓글을 읽는 것은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다. 기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 5월 말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을 읽는다는 사람이 70.2%였고, 읽는 이유로는 ‘기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가 84.0%였다. 다들 다른 사람 생각에 관심이 많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주장을 유심히 관찰하는 쪽으로 발달해 왔다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지난 4월 구속 기소돼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 김모(48)씨는 사람들의 원초적 궁금함을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알려진 드루킹 일당의 혐의를 보면, 이들은 2016년쯤부터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 매크로 등 비정상적인 프로그램을 동원해 수만 개의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수백만 번의 ‘부정클릭’을 했다. 이들의 목적은 아마도 여론 조작이었을 것이다. 논리구조는 다음과 같다. 부정클릭이나 댓글 달기를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댓글을 ‘베스트 댓글’이나 ‘댓글 많은 기사’로 만들면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후보를 좋아하는군’ 혹은 ‘많은 사람들이 홍준표 후보를 싫어하는군’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도 그런 쪽으로 의견이 변하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다. 악단(밴드왜건)을 태운 마차가 거리를 행진하면 사람들이 그 마차를 따라가게 된다. 맛집이라고 소개되면 특별한 맛이 없더라도 많은 사람이 찾는 것처럼, 특정인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으면 자신도 모르게 비판하는 쪽에 서게 된다.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대목이 많다. 베스트 댓글에 달린 의견을 읽는다고, 많은 사람이 A라는 의견을 가진 것 같다고 인식한다고 해서, 개인의 의견이 바뀐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주장에는 공감하고 집중하지만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투표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첫인상’이라는 과격한 주장도 있다. 여론 조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수많은 변수들이 중첩돼 있는 데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드루킹 일당이 댓글 조작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론 조작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드루킹 사태로 정치권과 언론의 뭇매를 맞은 네이버는 조만간 뉴스 개선안을 발표한다. 개선안에는 댓글 정책 변화도 담긴다. 댓글 기능을 언론사로 넘기는 방안, 댓글 작성자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공론의 장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았던 댓글 문화가 일부에 의해 오염됐고, 결국 축소의 길을 걷게 됐다. 세상 많은 일이 그렇듯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된 셈이다.

촌철살인 논평의 장이 아닌 감정의 배설구가 돼 버린 댓글 문화가 효력을 다한 것인지,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하려 했던 드루킹 일당의 문제가 너무 컸던 것인지, 건전한 공론의 장보다는 댓글 순위 놀이 멍석을 깔아놓은 네이버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댓글이라는 형식은 축소되더라도 공론의 장은 계속 확대돼야 한다. 조금 시끄럽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서로 다른 관점과 주장이 충돌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언론, 네이버, 정치권이 함께 고민할 지점이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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