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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법] 당신도 난민이 될 수 있다



아들들은 무뚝뚝하다. 중학생만 되어도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다. 수컷끼리 살갑게 지내기 어려운 것은 자연의 섭리인가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딸을 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우리 집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물고 빨며 예뻐했던 작은아들 녀석도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40년 전의 내가 아버지한테 한 것처럼 나를 대한다.

그러던 작은아들이 얼마 전 심각한 얼굴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아빠는 변호사회 회장이니까 좀 도와 주세요.” 중2병을 가볍게 잘 넘겼나 싶었는데 변호사까지 필요한 대형 사고를 쳤나 하고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오랜만에 아들 녀석을 꼬옥 안아 주면서 “아빠가 꼭 도와줄게”라고 약속했다.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에 이란에서 온 친구가 있다고 한다. 아빠를 따라 온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기 때문에 외모 말고는 아무런 장벽 없이 친구들과 지내 왔다고 한다. 중학교에서는 학급 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다고 한다. 3개월마다 체류 비자를 연장하다 아버지와 함께 난민신청을 했는데, 1심과 달리 2심과 대법원에서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 학생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여느 한국 아이들처럼 친구와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데 있다. 기독교 개종은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사회적 핍박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한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자, 그보다 더 절실하게, 정말 죽기 싫어서 자신의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에 대해 자국 이익 우선이라는 장벽을 세우는 것이 과연 옳은가.

우리가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의 바닥에는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인종차별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본 ‘앤트맨과 와스프’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가 만든 인종차별 공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흑인은 마약을 파는 범죄자, 아랍인은 테러리스트, 중남미인은 범죄단체 조직원으로 등장했다가 어김없이 백인 영웅의 총이나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동양인 역시 영어도 못하면서 몸짓만 우스꽝스러운 가게 점원 등으로 등장하는 등 예외가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만든 나라, 이슬람 난민 수용을 금지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인 미국도 사실 영국에서 종교적, 정치적 박해를 받고 조국을 떠난 난민들이 세운 나라다. 지금의 비핵화 논의가 깨지고 북측의 우발적인 도발로 전쟁이 나면 당신도 난민이 될 수 있다. 그때 유색인종인 당신을 어디에서도 난민으로 받아주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지난 7월 20일 ‘한국 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라는 토론회에서 난민법 전문가인 황필규 변호사를 만났다. “수고 많으시네요”라는 말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뭐”라는 그의 대답이 귓가를 맴돈다. 그렇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한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법 중에 최고의 법은 함께 사는 법이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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