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노희경] 디모데와 요한의 ‘옥중편지’



“사랑하는 울 엄마, 또다시 새로운 형제들과 지내게 됐습니다. 110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있는 노역장으로 출역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새로운 곳에 예비하셨을 섬김과 도전을 기대하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며칠 전 받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일부다. 홀리네이션스선교회 대표 김상숙 권사는 매일 오전 함께 나누면 좋을 만한 글을 보내주는데, 이 메시지 제목이 ‘디모데와 요한의 편지’다. ‘옥중’ 두 아들이 써 보낸 손편지를 정리해 보내준 것이다.

지난 2월 그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두 아들을 면회하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오전 9시 청주교도소에서 디모데를, 오후 2시 광주교도소에서 요한을 접견했다. 김 권사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고 함께 찬양을 불렀다. 두 아들은 성경말씀을 암송했다. 방음 유리를 사이에 둔 15분의 짧은 만남은 은혜로 드린 예배였다. 디모데와 요한은 김 권사의 친아들이 아니다. 복음으로 맺어졌다. 그들을 아들 삼으면서 ‘디모데’ ‘요한’이란 이름을 선물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두 아들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잘 성장했고 옥중에서 예수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날 만남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치 않다. 김 권사에게 보낸 디모데의 첫 편지엔 ‘사회에서 나는 암적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허접쓰레기로 취급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랬던 그가 감방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독려한다. 아픈 무기수들에게 약을 가져다주고, 설거지도 도맡아 한다. 다른 아들 요한은 종일 목공일을 하고 번 돈을 모아 2년째 설날이면 200만원을 김 권사에게 보낸다. 아들의 돈으로 어머니는 어려운 외국인들을 돌봤다. 허접쓰레기일지라도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명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두 아들에게서 봤다. ‘불안’의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불안의 첫 번째 원인으로 사랑의 결핍을 꼽았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사랑만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선풍기 고장으로 하루 종일 노역장 안에서 찜통더위의 위력을 경험했습니다. 저녁때쯤 고쳐진 선풍기가 ‘씽씽’ 돌아가는데, 얼마나 시원하고 고맙던지요. 더위에 지쳐 있던 동료들과 제 얼굴에 웃음꽃이 폈습니다.” “두 달 전쯤 문틈에 손가락이 끼는 바람에 손톱이 반쯤 까맣게 변색됐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통증에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손톱이 거의 빠져 나와 손톱 깎기로 잘 다듬어 편해졌지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사용하게 돼 감사했습니다.”

찜통 날씨에, 그것도 어두운 ‘담 안’에서 웃고 감사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 해답 역시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두 아들에게서 배웠다. “엄마는 기쁜 일에는 당연히 감사하고, 일상에선 받은 복을 세며 감사하고, 나쁜 일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하지 못한 것은 그 가르침을 그때그때만 깨달았고 어려운 중에는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감사는 새 사람의 증표이다. 감사함으로 앞으로의 상황도 바뀔 수 있다. 안성우 로고스교회 목사는 책 ‘최고의 질문’에서 감사가 사라진 이들에게 ‘리프레이밍’을 처방해주고 싶다고 했다. 프레임을 바꿔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인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새벽기도에 못 나갔다면 하나님이 잠을 주셨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면 그 덕에 운동했다, 지하철이 늦게 와 짜증날 땐 회의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게 리프레이밍이다.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은 바람은 불지 않는다. 짜증나는 여름이지만 한철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있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여름이 가고 있으니 곧 시원한 가을이 올 것이다. 상황을 리프레이밍해 보니 조금은 찜통더위를 이길 수 있지 않은가.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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