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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김병준 혁신의 성공 조건



전임자 배타적 언어에 비해 메시지 품질 향상됐지만
민심이 움직일 만큼 정치적 매력은 보이지 못해
결국 사람의 문제다 보수 궤멸의 책임을 묻고
대안적 리더를 찾아 세우는 마키아벨리스트 돼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프트랜딩하는 모습이다. 그가 잡은 마이크는 성능도 괜찮고 울림도 있었다. 정치가 결국 말이고, 정치적 경쟁의 핵심이 ‘썰전’이라면 그는 ‘말의 검투사’가 될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전 선장이 저품질 불친절 메시지로 오는 손님도 쫓아낸 것에 비해 그의 메시지는 품질 향상을 이루었다. 개인과 사회가 국가보다 커야 한다는 그의 ‘국가주의 비판’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국가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는 정권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효과를 가진다. 아울러 그것은 보수에 대한 자성의 의미도 담고 있다. 자유와 자율,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보수는 과거 시대의 권위주의나 국가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굴러온 돌’에게 절실한 첫 단추는 잘 끼운 셈이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아직 10%대인 한국당 지지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에도 반사이익이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 유권자들의 의식 분포는 크게 20%씩 5분위로 나눠볼 수 있다. 맨 오른쪽 20%가 전통적인 강성 우파다. 그 다음 20%가 자유주의적 온건보수층이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시장을 중시한다. 반대로 왼쪽 끝 20%에 강성 좌파가 있다. 체제 비판 세력이다. 그 다음 20%에 리버럴한 진보층이 있다. 그리고 중간 20%에 이른바 ‘스윙층’, 즉 상황에 따라 정치적 지지가 바뀌는 층이 존재한다. 사실 오른쪽과 왼쪽 40%의 투표 성향은 잘 안 바뀌고, 중간 20%가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면서 정치적 승부가 갈려 왔다. 지금의 한국당은 가장 오른쪽 20%의 관성적 지지를 빼면 스윙층은 물론 자유주의적 보수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김병준 위원장의 혁신은 마음 줄 곳이 없는 자유주의적 보수층을 되찾아 오고, 나아가 스윙층까지 겨냥하는 정치적 매력을 만들어내야 의미가 있다.

민심은 변했다는 확신을 주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민심을 움직일 혁신은 무엇일까. 물론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가다듬고 노선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충분조건은 결국 사람의 문제다. 그것은 단적으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과 사람을 정리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권과 맞설 수 있는 중심적 인물, 즉 대안적 리더를 창출하는 것이다. 정치는 상징의 싸움이다. 가장 큰 상징은 인물이다. ‘왕벌’이 없는 정치세력은 팥 없는 찐빵이다. 혁신의 결과로 치러질 전당대회가 이 범보수의 ‘왕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어야 새로운 출발은 공인받을 수 있다. 지금 당내에서 거론되는 과거형 인물들의 도토리 키 재기 식 경쟁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범보수가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왕벌’을 노리는 사람들이 적극 참여하는 개방적 무대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정리하는 것이다. 보수 궤멸의 위기에 가장 책임이 있는 인물을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혁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꼭 필요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공천시스템 혁신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당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지난 세 번의 공천 실패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2008년 2012년 2016년의 공천이 모두 ‘파벌에 의한 사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국가에 대한 도덕적 열정으로 무장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권력의 양지를 좇는 ‘해바라기형 인물’만 넘쳐나는 당이 되었다. 21대 총선에서 이기주의와 보신주의로 선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을 국정에 헌신할 열정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로 교체할 수 있게 공천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다시는 권력자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파벌 공천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싹을 없애야 한다. 현역이 유리한 공천 방식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인재들이 다시 몰려들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은 국민공천배심원제 등 이미 다양하게 나와 있다. 의지가 문제이고 기득권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른바 ‘적폐청산’과 지방선거 압승으로 여권의 ‘보수 궤멸 전략’이 절반은 성공했다. 총선에서 압승하고 대선까지 치달으면 ‘20년 장기집권 플랜’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보수가 혁신과 통합에 성공하지 못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대로 고착될 것이다. 이 운동장을 바로잡는 게 김병준 위원장의 임무다. 따라서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처세가 아니라 정치적 목표를 명확히 하고 숱한 어려움을 돌파하면서 이를 성취해내는 마키아벨리스트의 면모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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