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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머그잔과 질그릇



지난 주일인 5일, 예배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런데 이전과는 풍경이 달랐다. 테이블마다 흰색 컵이 놓여 있었다. 연인과 친구, 가족들은 흰색 머그잔을 사이에 두고 대화 꽃을 피웠다. 나무 소재 테이블은 머그잔과 잘 어울렸다. 이 커피숍은 그전까지 여느 카페처럼 뜨거운 음료는 종이컵에, 찬 음료는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던 곳이었다. 카페 내 일회용 컵 단속 이후 달라진 모습을 실감했다.

개인적으로 지난 6월 초부터 사무실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중단했다. 대신 머그잔과 투명 유리컵을 사용 중이다. 하루에 대여섯 개의 종이컵을 썼으니 출근한 날만 계산해 250개 정도를 줄인 셈이다. 일회용 컵을 쓰지 않게 된 것은 종이컵 소비가 너무 많아서였다. 어느 날은 10개가 넘었다.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 자체에서 묻어나올 수 있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종이컵은 뜨거운 액체가 닿는 부분에 폴리에틸렌 코팅 처리가 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이 폴리에틸렌이 105∼110도에서 녹기 때문에 안전하다고는 했으나 꺼림칙했다.

머그잔을 사용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다. 환경호르몬 걱정 없이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안도감, 환경 보호에 참여한다는 뿌듯함(이달 말이면 종이컵 400개를 아끼게 된다), 매일 머그잔을 씻은 후 느끼는 정갈함은 소확행(小確幸)이 따로 없다.

좋은 용기에 음식을 담으면 품격이 있어 보인다. 차분한 무광색 그릇은 음식을 세련되게, 흰색 그릇은 요리를 돋보이게 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은 따스함을 선사한다. 머그잔과 유리잔에 담긴 커피 역시 더 멋스럽고 맛이 나는 것 같다.

최근 유리컵에 얼음을 채우고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부어 본 적이 있다. 이를 휴대전화 영상으로 찍었는데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이 작동했다. 뜨거운 커피가 얼음에 닿자 얼음들이 녹으며 알맹이끼리 서로 부딪쳤고 동시에 유리컵 내부를 스르르 긁어내려갔다. 겨우내 얼었던 시냇물과 물속 돌들이 풀리는 것 같은 비성(秘聲)에 눈과 귀가 즐거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식기로서 가장 안전한 재질은 유리라고 한다. 어떤 첨가물이나 중금속도 섞일 위험이 없다. 잘 깨지고 열에 약한 게 단점이다.

도자기는 그다음 안전한 식기로 꼽힌다. 도자기는 유약을 사용해 고온에서 굽는다. 유약은 도자기 표면을 피복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유리질 소재로, 장석 석영 석회석 고령토 등을 물에 타 만든다. 유약은 도자기 표면에 광택을 주어 아름답게 하는 것 외에 강도를 더하고 표면을 반질반질하게 해서 오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또 물이나 화학약품에 대한 저항성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이 모든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1250도라는 고온에서 굽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성경시대에서는 흙으로 된 질그릇이 대부분이었다. 질그릇은 보통 진흙을 빚어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용기를 말한다. 나무나 가죽 금속 상아 등의 재료로 그릇을 만들었지만 흙그릇이 보편적이었다. 구약시대에도 머그잔이 있었다. 히브리어로는 ‘코스’라고 하는데 손잡이가 없는 컵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엔 지금과 같은 유약은 없었지만 ‘슬립’이라 부르는 진흙과 물을 섞어 만든 액체에 도기를 입혀 구웠다고 한다. 질그릇이 유약을 바르지 않아서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질그릇 중 푸레그릇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옹기다. 유약 없이 가마에서 고온으로 오래 구워내 친환경 웰빙그릇으로 분류된다.

하나님을 비유하는 표현 중 하나는 토기장이다. 토기장이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고, 사람들이 불순종할 때 잘못 만들어진 토기를 깨뜨리는 것처럼 징계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바르게 살도록 끝까지 도우며 간섭하신다.

유례없는 폭염과 기상이변, 기후변화는 타락한 인류가 초래한 죄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질그릇은 연약한 인간 존재 다름 아니다.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보배인가. 썩어질 것인가.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롬 8:19)

신상목 종교국 차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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