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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박재찬] 오만증후군



‘만(慢)’자의 쓰임새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거만한, 게으른, 늦은 따위의 뜻을 갖고 있는데 모난 성품을 말할 때도 종종 쓰인다. 자만 교만 거만 오만 같은 게 대표적이다. 속칭 ‘자랑질’로 볼 수 있는 자만은 자기 과시욕에서 드러난다. 교만은 여기에다 ‘건방진’ 뜻이 더 붙는다. 자만이 극에 달하면서 남을 깔보는 행태가 더해지는 것이다. 교만한 행동거지가 상대방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심각한 게 거만이다. 오만은 자만과 교만, 거만함을 넘어선 수준이다. 오만불손한 사람은 제어하기 힘들다. 성경에는 이들 단어가 189차례나 등장한다. ‘교만하면 패망하고, 거만하면 넘어진다’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는 식의 경고성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최근 서울에서 한 월간지 주최로 오만포럼이 열렸다. 개인과 조직에 있어서 오만함의 위험성을 들여다보고, 원인을 살피며 예방책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오만은 자부심과 자기애, 자기 착각, 비판에 대한 거부감이 합쳐져 탄생한다. 이것이 기업이나 기관, 혹은 집단 문화에 침투하면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확신이 퍼지면서 온갖 오류와 실수를 저지른다.” 영국 오만학회 ‘다이달로스 트러스트’의 설립자 데이비드 오언이 내린 결론이다.

오만을 유발하는 요인은 뭘까. 영국 서리경영대학원의 유진 새들러 스미스 교수는 ‘리더의 권력, 최근의 성과, 언론과 추종자의 찬사’를 꼽았다. 리더가 자신의 권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고 찬사를 받으면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쉽다는 것이다. 리더를 억제할 외적인 장치가 없을 때도 오만해지기 쉬운데, 직언을 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 등이 그렇다. ‘오만함을 피하기 위한 팁’도 제시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갖고 있는 단점을 인정하는 것,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직에서 오만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는 ‘고신뢰조직(HRO·High Reliability Organizations)’이 있다. 사소한 실수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조직에서 사용하는 리스크 관리 모델이다. 일례로 항공사에서는 낮은 직급의 승무원도 상급자가 내린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설명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를 갖는 것이다. 또 다른 오만방지책으로 ‘토홀더(Toeholder)’가 있다. ‘발가락을 잡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리더에게 거리낌 없이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스미스 교수는 “토홀더가 적을수록 리더가 오만에 빠지기 쉽고, 오만에 빠진 리더는 그 수렁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오만의 위험성을 그 어느 정부보다 잘 알고 있고 각별히 조심하는 것 같다. 촛불 민심으로 태동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6·13 지방선거까지 압승하면서 행여 우쭐해지지는 않을지 경계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지방선거 직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공직자일수록 국민을 받드는 겸손한 태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도 쉽게 읽힌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취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취임 1주년 때 최고조였다가 3개월 만에 50%대로 떨어진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경제 문제로 초점이 모아진다. 소득주도성장론,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정책 논란이 격화되면서 국정 신뢰도를 깎아내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생산·투자·소비 등 2분기 주요 경제지표까지 나빠졌는데, 경기 둔화냐 아니냐를 두고 보이는 정부의 애매한 태도는 불에 기름을 얹은 꼴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와 경제 주무부처 간 갈등설까지 불거졌다. 혹시 청와대와 경제부처가 저마다 “우리가 옳다”며 서로 깔보고 심기를 건드리는 수준까지 이른 건 아닌가. “이건 아니오”라고 발가락을 붙잡는 사람도 없는 걸까.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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