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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황재호] 新한반도 운전자론



지난 13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의 9월 평양 개최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말처럼 ‘기자 선생들 궁금하게’ 만들려는 것일 수도 있고, 전략적 이유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남북 간 신뢰가 여전히 작동한다는 방증이다. 2차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의 취소 위기를 넘겼듯 3차 정상회담이 비핵화와 체제 보장 이견으로 교착상태인 북·미 관계를 견인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더 신중하고도 인내하는 신(新) 한반도 운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 입장 변화를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 실험장 폐기 등 선제적 조치에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준 것도 선물, 한·미 군사훈련 중단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호랑이 등에 같이 올라타 있지만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비핵화의 진전 없음을 빌미로 트럼프가 대북 군사적 강경 입장으로 선회할 작은 가능성마저 방심해선 안 된다.

다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현재 미국 입장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과 제재 해제는 맞물려 있는 것인 만큼 남북 경제 협력을 요구하면 할수록 미국의 한국에 대한 거부감과 의구심만 커지게 된다. 그럼 제2의 북한 석탄 반입 건이 또 발생하게 된다. 남북 관계의 동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되지만 미국 우선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셋째, 북한이 무모한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언을 다해야 한다. 미국이 동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북한이 미국 중간선거 이전 마이웨이를 하면 그간 쌓은 마일리지를 모두 날린다. 동시에 중간선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쓰며 미국의 공전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 그나마 김정은이 믿을 곳은 트럼프뿐이다. 중간선거 때까지 트럼프의 최고 관심사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중심으로 성의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종전선언을 포함한 우리 나름 평화체제 로드맵과 구축 시간표를 그려야 한다. 종전선언을 평화체제의 큰 틀과 긴 과정에서 보아야 한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대북 안전보장 약속의 상징으로 필요할 수 있지만 종전선언 없이 바로 평화협정으로 갈 수도 있다. 모든 상황을 열어놓고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다섯째,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종전선언과 관련한 성과를 내야 한다. 정치적 선언이던 종전선언이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되었다. 사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줄 선물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종전선언을 늦출수록 트럼프 입장에선 최선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는 종전선언에 대해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이달 말 방북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9월 유엔총회 혹은 다른 시기에 미국이 양자, 3자, 4자 등 어떤 것을 원할지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형식이라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호응해야 한다.

여섯째, 중국을 잘 활용해야 한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3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종전선언은 비핵화 견인에 긍정적이고 유용하다고 했다. 그간 중국은 종전선언 반대란 인식이 강했지만 중국은 처음부터 참여하길 원했고 반대한 것은 남·북·미 3자 형식이었다. 향후 중국을 한반도 문제의 상수(常數)로 했을 때 한반도 논의는 더 복잡해질 수 있지만 중국을 패싱했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걸리는 시간보다는 덜 걸릴 것이다.

한국은 분명히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자다. 그러나 한국은 포뮬러 원 역사상 최다 우승과 기록을 경신했던 독일의 자동차 경주 선수 미하엘 슈마허일 필요는 없다. 동네 지리를 가장 잘 아는 마을버스처럼 구불구불 골목길을 밤낮으로 묵묵히 안전운행을 한다면 화려하지 않아도 모두가 우리 역할을 인정할 것이다. 필요할 때 나서고, 나설 때 믿을 만한 운전자야말로 우리의 신 한반도 운전자 모습이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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