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자신을 버리지 않았겠는가만, 그의 어머니도 그를 위해 한평생을 바치셨다. 36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그 3년 뒤 큰아들마저 잃고, 남아 있는 3남매를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 바쳤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신앙과지성사)를 쓴 이현주 목사의 얘기다. 이 목사의 어머니는 밤이 되면 집에서 잠을 자는 법이 거의 없었다. 예배당 찬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하며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요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 날이나 누구라도 마음에 한이 맺혀 견딜 수 없을 때면 제단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었다.

가슴이 아파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이 땅의 어머니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제단 앞의 차가운 마룻바닥이었다.

어느 날 돼지죽을 주려고 양동이를 들어 죽통에다 붓는데 성급한 돼지란 놈이 주둥이로 힘껏 양동이 바닥을 쳐올렸단다. 중학교 1학년이던 그의 완력으로는 그 밀어 올리는 힘을 맞상대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양동이는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옆으로 기울어져 아까운 죽이 더러운 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마침 지나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 이 목사의 어머니는 화산처럼 화를 폭발시키더니 마당 구석에 있던 댑싸리비로 사정없이 그를 치는 것이었다. ‘돼지죽도 제대로 못 주는 놈’이라고 욕을 하면서 말이다.

그는 본디 매를 피하여 달아나지 않는 성미인지라 고스란히 빗자루 세례를 온몸으로 받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왜냐하면 죽을 엎지른 것은 내가 아니라 돼지인데….”

이 목사는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어머니가 잘못하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모든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도 어찌 실수가 없었겠어요? 신사임당이라 한들 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거룩하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인간적 실수와 과오를 청산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교회도 어머니와 같다고 한다. 들여다보면 온갖 실망과 낙담을 안겨주는 모습들이 보인다며 교회의 2000년 역사는 그대로 부끄러움의 역사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안타까운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부자 세습으로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교회나 스승의 가르침을 거리낌 없이 거스르는, 사랑하지 않는 교회 등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과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참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일이 흔하니 말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빛과 소금, 등대의 역할을 잘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어머니다. 그 품은 늘 따뜻하고 평온했다. 땀 냄새와 가슴을 품은 수면제였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어머니 숨결은 슈퍼 비타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던 그 사랑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호화 건물, 대리석에 화려한 십자가로 빛나지만, 정작 예수의 향기는 아득하기만 하다.

이 목사는 어머니를 사랑하듯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교회는 나에게 어머니와 같아요. 교회가 없었으면 예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예수를 만날 수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나’라는 나무가 그 위로 솟아야 하는 땅이요, ‘나’라는 새가 깨뜨리고 벗어나야 하는 알입니다. 어느 날, 문득 교회보다 커져 있는 내가 보였을 때 나는 교회가 참 고맙다고 여겨졌어요. 어머니를 껴안으려면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야 하는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려면 교회라는 틀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식이 어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듯이 나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