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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홍관희] 北 대남 전략의 준거, 판문점 선언



‘염불보다 잿밥’이란 말처럼, 비핵화엔 관심 없는 북한이 종전선언과 제재 해제만을 한·미에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산 석탄 밀반입 사건이 터져 문재인정부 남북관계 올인의 고질적 병폐를 한순간에 노정시켰다. 유엔 결의를 위반하면서 서류 위조 및 장기간 수사 공백이 이뤄진 정황은 북한 봐주기를 위한 ‘의도된 방치’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문재인·김정은 남북 수뇌가 9월에 3차 회담을 열어 연내 종전선언을 관철시키려 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허용할 경우 북한 비핵화 거부 시 군사 옵션 명분을 잃을 수 있음을 우려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뉴욕타임스). 북한이 핵 시설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려 한다는 설도 있으나 그간의 북한 행태로 보아 국면전환용이거나 또 다른 살라미 전술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거부는 최근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수준이다. 미국이 6·12 미·북 회담의 후속 조치로 6∼8개월 내에 70∼80% 비핵화 의사를 타진했으나 북한은 이를 정면 거부하고 도리어 ‘미국의 제재 압박 때문에 비핵화를 못하겠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동시에 북한은 핵 협상 결렬에 대비해 국제적 항미 통일전선과 남북 반미자주 연대 구축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을 9·9절에 초청해 북·중 동맹을 최후의 버팀목으로 확보하고, 이란과는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미 인식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우주군 창설을 격려하는 국방부 연설에서 중·러·북·이란이 미국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13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북한이 돌연 제의한 것도 남북 경협에 집착하는 문재인정부를 끌어들여 대남 전략 목표를 관철하려는 음모다. 회담 중 이선권 대표는 북한의 관심 사안이 해결 안 될 경우 (정상회담 등) 일정이 난항을 겪을 것이란 반(半)협박성 고압적 태도를 보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노동신문 등 북한의 주요 매체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라며 끊임없이 문정부를 독촉한다. 결국 4·27 판문점 선언을 민족자주에 입각한 남북 공조의 확실한 준거이자 대남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은 대한민국 입장에서 치명적 부당성과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 북한 비핵화가 벽에 부닥쳐 평화가 요원한 데도 “한반도에 전쟁은 없을 것이며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 사실을 왜곡했다. 더욱이 북한의 대남 구호인 ‘민족자주·자주통일’을 선언문에 명문화해 자유민주주의 국기(國基)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이란 불명료한 개념을 도입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침해하고 있다.

북한은 엄연히 사회주의 주체 경제로서 지금 빈사 직전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시장경제체제 하의 대표적 성공 국가다. 민족경제의 정의가 무엇이며, 남북의 상이한 경제체제를 어떻게 균형 발전시킨다는 것인지, 핵 보유를 굳히는 북한과 어떻게 공동 번영이 가능한지 납득이 안 간다. 8·15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경제공동체 건설을 주장했지만, 혹여 북한 핵 개발을 도울 경제 지원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까 우려된다.

남북 공조를 놓고 한·미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이 9월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체제의 정당성을 선전해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가운데 국무부는 남북관계와 비핵화가 분리될 수 없고 평화체제보다 비핵화가 우선임을 강조하며 문정부에 속도 조절을 에둘러 주문했다. 개성공단 재개의 부적절성도 언급했다.

북한의 비핵화 없는 평화는 허구일 뿐이다. 지금 민족·평화 담론 중심의 감성적 접근이 올바른 대북 인식과 한·미동맹을 교란하고 있다. 남북 경협의 과속 추진으로 국제 제재의 틀을 깨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북한 대남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역시 전적으로 부당하다.

홍관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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