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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신창호] 선한 의지와 아마추어리즘



뭔가에 대단한 열정을 쏟는 사람을 우린 여러 가지의 일반명사로 부른다. 미치광이란 뜻의 영어 ‘마니아(mania)’라거나, 일본어의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바꿔 ‘(오)덕후’라 칭하기도 한다. 마니아 또는 덕후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직업이 따로 있고, 지금 몰두하는 대상은 취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니아와 덕후들은 대다수가 아마추어(amateur)다.

알고 보면 아마추어도 ‘뭔가를 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어원은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다. 그리고 이 라틴어는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큐피드에서 생겨났다. 금화살과 납화살을 지닌 큐피드는 장난삼아 화살을 쏘아 올렸다. 우연히 금화살에 맞은 인간은 사랑에 빠지고, 납화살에 맞은 인간은 무조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도록 만들었다. 어느 날 태양의 신 아폴로가 디프네라는 요정을 봤다. 큐피드는 자기보다 잘 생기고 활도 잘 쏘는 아폴로가 미워, 그에게 금화살을 쏘고, 디프네에겐 납화살을 쐈다. 아폴로는 디프네에게 사랑에 빠졌고, 디프네는 무조건 아폴로를 싫어했다. 열심히 디프네를 쫓던 아폴로 앞에서 디프네는 월계수 잎으로 변해버렸다. 사랑하는 연인이 나뭇잎 한 조각으로 변해버리자, 절망에 빠진 아폴로는 영원히 이 월계수 잎을 간직했다고 한다.

아모르는 로마 신화판(版) 큐피드다. 큐피드 또는 아모르의 금화살에 맞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아마추어다. 그러니 아마추어란 말은 야누스처럼 서로 다른 두 얼굴의 뜻이 포함돼 있는 셈이다. 열정을 다 받쳐 사랑한다는 의미와 그렇게 사랑해봤자 ‘말짱 도루묵’이란 뜻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 아마추어는 두 가지를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지금 뭔가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사랑의 대상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은 사랑이 곧바로 현실이 되지 않는 곳이니까. 사랑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의 방법을 바꾸거나, 사랑의 대상을 바꿔야 하는 게 세상이치니까.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아마추어의 도전’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이만큼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타인에겐 자기를 전부 내줄 만큼 관대하면서도, 아마추어는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남을 물리치고 밥벌이를 따내야 할 정도로 힘겹거나 절실해 보이지 않아서다. 이런 아마추어가 갑자기 모든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의 사랑만이 만병통치약이고,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며, 꼭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라 믿게 되는 때다. 사랑이 맹목이 되고 수단과 방법조차 가리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아마추어에게 염증을 내기 시작한다.

가끔 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조직, 어떤 기구, 어떤 나라, 어떤 정부를 통해서 아마추어를 대면하게 될 때가 있다. 한참 세상이 팍팍하게 돌아가는데 멋진 미사여구를 외치거나, 허황된 미래상만 보여줄 때다. 출범한 지 1년을 갓 넘긴 문재인정부를 향해 “완전 아마추어”라고 하면 매우 무례하고 무리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간간이 아마추어의 향기가 풍긴다고 하면 틀리진 않을지 모른다. 전체 고용은 지난 정부보다 더 후퇴했는데 국민 혈세를 들여 공공부문 일자리만 집착하는 모습이 그렇다. ‘아르바이트생’을 자를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들 사정은 외면한 채 도그마처럼 최저생계비 인상만 고집하는 태도가 그렇다. 엊그제는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가 엇박자를 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굳건히 지킬 태세지만, 실물경제를 운용하는 경제부처 수장은 생각이 다른 듯하다. 청사진처럼 그려진 멋진 미래상을 실현시킬 방법, 그걸 찾아내야 아마추어 신세를 면한다. 사랑에만 올인하다 결국 사랑의 대상을 놓치고 마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신창호 토요판 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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