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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칼럼] 경제, 성적으로 말하라



버디 찬스에서 보기를 범한 정책 실패는 큰 교훈
미숙한 정책 운용, 불협화음 빚는 경제팀 재정비 필요
소득주도성장이든 혁신성장이든 성과 내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경제 문제가 모든 국정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경제가 좋지 않으니 촛불혁명도, 적폐청산도, 한반도 평화도 다 묻힌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라크 전쟁 승리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둔 조지 부시 대통령을 1992년 미 대선에서 이긴 빌 클린턴의 구호처럼 지금의 경제 상황이 문재인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경제는 시급한 국정 현안이 아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적폐청산이라는 답변이 단연 1위였다. 그러나 불과 반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경제로 바뀌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80%대까지 올랐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고용 위기와 경기 침체로 인해 50%대로 떨어졌다. 국민들의 변덕이 심한 것일까. 안보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기는 하지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여기에는 정부의 정책 실패가 한몫했다.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 ‘버기’라는 말이 있다. 버디 찬스인데도 불구하고 퍼팅을 잘못해 파는커녕 보기를 범한 경우로 버디와 보기를 합성한 조어다. 최저임금 인상은 원래 호재였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일석이조의 좋은 정책이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용인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잘만 하면 지지율을 더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문제는 미숙한 정책 운용이다. 2년 만에 29%를 인상했다. 버디 찬스였지만 마음만 앞선 나머지 공을 너무 세게 친 것이다. 공의 속도가 빨라 홀컵을 멀리 지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자영업자 대책 등 보완책도 미흡했다. 그 다음 퍼팅마저 실패해 파도 놓치고 보기를 한 것이다. 높은 지지율이 주는 자신감과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정당성,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경제 현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요소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했다.

정부가 열 가지를 잘했더라도 한 가지만 잘못하면 공세를 취했을 야당에게 딱 떨어지는 빌미를 준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한 놈만 패자. 한국당 국회의원 모두가 나서서 잽만 날려도 문재인정권은 주저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한 놈은 경제가 될 것이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적폐세력으로 꼽혔던 한국당이 촛불 정부를 무능 프레임으로 역공을 할 수 있는 호재다. 더구나 경제는 구조적인 문제여서 어느 정부든 마음대로 잘 안 되는 분야다. 문재인정부에도 가장 약한 고리다.

최저임금과 관련한 정책 실패가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전체의 실패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실패한다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컵에 물이 반 남았으면 반 남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반밖에 안 남았으니 큰일이라고 말한다든지, 반이나 남았으니 걱정 없다고 하는 것은 주관적이고 의도적이다. 각종 경제지표가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문재인정부를 무능한 정부로 낙인찍고 경제 비관론을 확산시키는 것은 다분히 정파적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매우 좋다고 말하는 것만큼 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적 요인이 많다. 경제가 완전히 파탄이라도 난 것처럼 정치공세를 펴면 실제로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경제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정부를 깎아내리고 반사이익을 노리는 것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경제가 망가져야 자신들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파나 세력이 있을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성공은 자기들에게는 실패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경제팀을 재정비해야 문제가 풀린다.

현 경제팀은 경제 컨트롤타워 기능과 권위를 상실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간에 갈등까지 불거졌다. 정책 방향이나 정체성을 따지기 전에 성적이 너무 좋지 않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현 경제팀을 경질하는 것이 부담이 클지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더라도 경제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아무리 휼륭한 경제 철학으로 만든 정책이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쁜 정책이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론보다는 경제 현장에서 묵묵히 성과를 내는 쪽으로 새롭게 진용을 정비해야 한다. 결국 성과로 말해야 하는 것이 정권의 숙명이다. 소득주도성장이든, 혁신성장이든 성과를 내야 한다. 퍼팅 폼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홀컵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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