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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진정한 회개



요즘 기독교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교회는 역대 최악의 상황에 처한 듯하다. 대통령 지지율처럼 한국교회 신뢰도를 매달 여론조사해서 그래프로 그린다면 몇 년째 내리막길로 치닫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이를 의식한 일부 목회자들은 정치적 이벤트로 신뢰도 반등을 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눈에 띄는 깃발은 한국교회 연합과 신사참배 회개다. 한쪽에선 한국교회의 연합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몇 년째 울려 퍼지고 있다. 하지만 무슨 깊은 속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 밖뿐만 아니라 교회 안 성도들도 달라진 시대에 제 역할을 못하는 연합기관에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왜 연합을 하려는 것일까.

정치권에서 천주교나 불교처럼 대표기관이 하나인 곳과 달리 기독교는 대화 창구를 어디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들은 기억이 난다. 보수적인 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만나면 진보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서 싫어하고, 한 사안에 대한 입장도 양쪽이 매번 달라 대응하기 어렵다는 푸념이었다. 교계의 대정부 창구 일원화, 설마 이런 이유만으로 연합을 외치는 건 아니겠지. 성경이 가르쳐준 연합이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목사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교회 갱신의 일환인 연합을 요한복음 17장 20∼26절 말씀을 토대로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스도가 기도하신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일차적으로 서로서로의 연합이 아니라, 사도들과의 연합(공통적인 진리)이며 성부 및 성자와의 연합(공통적인 생명)이었다. 교회의 가시적이고 구조적인 연합은 올바른 목표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심오한 어떤 것, 즉 진리와 생명 안에서의 연합에 대한 가시적 표현일 때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지금 교계의 연합 운동을 보면서 ‘진리와 생명 안에서의 연합’의 흔적을 도통 찾지 못하는 건, 나의 문제인 것일까.

다른 한쪽에선 신사참배 결의 80년이 된 올해, ‘회개’라는 외침을 앞세워 여러 행사를 펼치고 있다. 회개하지 않는 것보다 회개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처절히 깨닫고, 뼈를 깎는 반성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있을까.

평양에서 태어나 평생 이 땅을 사랑했던 선교사 한부선(1903∼1992·본명 브루스 헌트)은 1946년 12월 23일,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날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다 당시 총회와 노회의 결정을 비판했고 이 때문에 교회의 당회와 ‘격투를 벌였다’고 적었다. 미국인 선교사였던 그는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 표결을 할 당시 선양노회 위원으로 참여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고 감옥행도 마다하지 않았던 터였다. 포로 맞교환을 통해 석방된 뒤 다시 한국에 들어온 그는 당시 교회 내 세력을 잡은 이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한 이들을 분리주의자로 몰아가고 반대파 선교사들까지 공격하는 걸 목격했다. 그는 “나의 이런 발언은 한국교회가 정화되고 강해지며 하나가 되는 것을 보고 싶은 염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회가 이 나라에서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교회의 진정한 회개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얼마 전 출간된 ‘한부선 서간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그가 한국교회에 요구한 ‘진정한 회개’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이제 우리 진짜 회개했어요’라며 스스로 외치고 보여주는 회개는 아니었을 것이다. 깊은 참회와 반성을 통해 스스로 달라진 삶을 살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교회가 진짜 회개했구나” 하고 인정해주길 바랐던 게 아닐까.

세상의 조롱과 비난에 조바심 날 때면, 우리는 자꾸 잊어버린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런 순간에도 세상을 통치하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그래서 세상에서 바로 통할 것 같은 방법을 찾고, 그걸 기어이 내 힘으로 해내겠다고 아등바등한다. 진정성 없는 깜짝쇼나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세상에서도 먹히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진정한 회개의 시작은 어쩌면 주변의 상황과 조건에 시선을 빼앗겨 복음을 못 미더운 것, 영 시시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을 떨쳐내는 것부터가 아닐까.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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