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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강준영] 美 방북 취소, 꼬이는 비핵화



답보 상태에 빠진 북·미 간 비핵화 논의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네 번째 방북이 전격 취소됐다. 그동안 비핵화 논의는 세부적 논의가 실종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전략적으로 비핵화의 기대 수준을 낮추는 데 성공했고, 한국 정부는 비핵화 동력으로서의 남북 교류 추진에 열중했다. 이제 북한의 비핵화 전술과 3차 남북 정상회담 및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북 등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비핵화 논의는 방향을 상실했다. 비핵화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선언과 미국의 비핵화 리스트 요구 교환으로 주제가 변질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비핵화 추동의 1차 단계로 판문점에서 북·미 간 실무 대화가 이어졌고, 일정한 의견의 접근도 본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와 달리 북한과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진전이 없고, 중국이 이를 제대로 돕고 있지 않다고 중국을 직접 언급하면서 방북을 취소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비핵화 논의가 순조롭지 않음을 인정한 것이며, 종전선언이 우선이라며 버티는 북한과 대북 제재에 느슨한 중국에 보내는 강력한 비판과 경고이기도 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성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폼페이오의 방북이 그렇지 않아도 각종 스캔들이 불거지고 있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중국 때리기’라는 미국 조야의 공감대를 이용해 비핵화 지연의 공을 중국에 넘기는 모습이다.

따라서 미·중 무역 갈등이 완화되거나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와 관련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점에서 몇 가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의도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중국 책임론에 대한 인식을 살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차례의 중·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마침 북한 9.9절 방북설이 파다한 시진핑 주석에게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구체적 양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설득하라는 압박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미·중 통상 문제와 대북 제재 연계를 천명한 이상 중국의 태도 변화가 주목된다.

둘째, 종전선언에 대한 미·북의 인식은 완전히 다르다. 북한은 ‘상징적인 종전선언조차도 안 해주는 미국’이라며 최소한의 적대정책 해소 조치로 해석하지만, 미국은 국제법적 준 평화협정이라는데 주목한다. 특히 북한이 당초에는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던 종전선언을 핵심 사안으로 들고 나온 것에도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믿는다.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유엔군 사령부 해체, 사드 철수 등과 연계될 가능성이 있고 모두 중국에 유리하다. 미국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중국 좋은 일 시켜준다는 인식이 있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김 위원장에 대한 친근감을 표현하면서 2차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얘기했지만 분명한 대북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군 유해 송환이나 핵 실험장 폭파, 미사일 실험장 폐쇄 등 미래 핵·미사일 조치로 미국을 설득하는 전술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는 기존 핵 처리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일부 유화적 조치로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어 제재를 완화시키려는 전술은 통하지 않는다는 경고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미국의 비핵화 논의 속도를 넘어서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국과 충분히 논의하면서 ‘비핵화 동력론’으로 남북 협상을 진행한다는 우리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계속 경고성 발언이 나온다. 지금은 적어도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의 당사자로서 국제사회와 공조, 분명한 책임을 다할 것임을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에도 확실히 전달해야 할 때다.

강준영(한국외대 교수·중국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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