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노희경] 엘리베이터와 플라스틱



몇 해 전 베스트셀러 시인이자 명강사인 용혜원 목사님을 만났을 때 ‘낯선’ 두 가지 물건에 시선을 빼앗겼다. 요즘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형 휴대전화와 스케줄을 빼곡하게 적은 낡은 공책 때문이다. 목사님에게 좋은 정보랍시고 “스마트폰 플래너나 카카오톡을 이용하면 편리하다”고 귀띔했다. 그때 느릿느릿한 말투로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대화할 때 ‘카톡카톡’ 하고 울리면 어디 신경 쓰여 얘기가 되나요. 펜을 잡고 종이에 글씨 쓰는 이 느낌이 좋아요. 온갖 기기들에서 자유로우니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지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등 꾸준히 시들을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목사님은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을 버리고 아날로그 감성을 택했다. 그러니 목덜미를 간지럽혀 신나게 웃는 해바라기, 이른 아침 풀잎에서 눈물을 흘리는 듯 보이는 아침이슬이 보였던 거다. 우리에겐 보이지 않던 야생화가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일상에서 조금씩만 비우고 버려도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작가 공지영도 책 ‘수도원의 기행’에서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고 했다. 비우고 또 버리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잘 알고 지내는 한 목사님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매일 신학연구소가 있는 11층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간다. 목사님은 “몇 초면 ‘휙’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버렸더니 몸이 건강해졌다”며 “따로 운동할 거 없이 계단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심폐기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목사님은 계단을 오르며 가끔 찬송을 부르고 말씀도 암송한다. 하루의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그 시간에 할 수 있다. 우리 집은 4층, 사무실은 5층. 엘리베이터를 버리고 계단 오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엔 몇 층 못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들었다. 차츰차츰 호흡이 편안해졌다. 건강도 챙기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편리한 엘리베이터를 버렸더니 비로소 얻게 된 삶이다.

편리하기로 따지면 플라스틱만한 게 또 있을까. 그런데 요즘 이 플라스틱을 ‘제대로’ 버리는 데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 나 역시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리고 머그잔을 사용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가방에 텀블러도 넣고 다닌다. 처음엔 거북했다. 컵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 귀찮음, 텀블러에 커피라도 담았으면 잘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 커피전문점에선 다른 사람이 마시던 컵을 사용해야 하는 찜찜함….

사실 환경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여름 전 세계가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그 중심에 그동안 쉽게 쓰고 버렸던 플라스틱이 있었다. 쓰고 싶을 때 사용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플라스틱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결국 우리의 이기주의가 쌓여 한반도의 15배가 넘는 ‘플라스틱 섬’을 만들었고, 그런 이기주의로 아사 직전의 북극곰이 얇은 얼음 위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게 됐다. 수많은 동물들이 플라스틱을 먹고 괴롭게 죽어갔다.

세상 편한 플라스틱은 꼭 버려야 한다. 더불어 우리의 이기심도 버려야 한다.

구약성경 창세기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28) 여기서 ‘땅을 정복하라’는 건 지배하고 다스리라, 땅을 훼손하라는 게 아니다. 이 말씀의 결론은 “보존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게 아니다. 이기심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게 아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물, 피조세계를 보호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다. 플라스틱을 버리면 깨끗한 지구를 되찾을 수 있다. 우리의 이기심을 내려놓으면 오가는 정(情)에 행복할 수 있다.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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