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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 낚시 ‘물 때’



내가 제주도로 이주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낚시다. 수원에 살 때 추자도로 낚시를 가려면 저녁 9시 출발해 이튿날 새벽 3시 진도에 도착하고 배로 추자도에 들어간다. 다시 현지 낚싯배로 포인트에 내려 낚싯대를 펴면 새벽 6시가 다 된다. 9시간 차 타고 배 타야 한다. 지금은 집에서 낚싯대 들고 100m 걸어가면 바다다. 우도는 차로 15분 걸려 성산항에 가고 배로 15분이면 포인트에 내린다. 추자도에 가려면 제주항까지 40분, 여객선으로 1시간 더 가면 된다.

강원도에서 원투낚시로 가자미나 살감생이를 잡던 것 빼고 1990년 갯바위 신발을 사 신고 전남 안마도로 나가 30㎝ 넘는 감성돔을 처음 잡은 때부터 계산하면 바다낚시를 28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코르크마개에 대나무 꼬치를 꽂아 찌를 만들어 붕어낚시를 시작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만큼 낚시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오래는 했다. 감성돔 58㎝, 벵에돔 52㎝가 내 기록이다.

낚시가 재미있는 건 변수가 많아서다. 바둑이 재미있는 것도 수가 많아서다. 낚시는 보이지 않는 물속의 물고기 입에 바늘을 물리는 게임이다. 생존본능으로 무장한 물고기의 경계심을 온갖 기술로 무너뜨려야 한다.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고 물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고기 시야에 흘려보내야 한다. 바늘은 작아야 하고 낚싯줄은 가늘어야 미끼를 물결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작고 가늘지만 물었을 때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미끼가 물고기 눈에 띄려면 그 물고기가 있는 수심까지 내리거나 밑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표층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물고기도 있고 중층, 바닥층 등 어종에 따라 다르다. 원하는 수심까지 내리는 건 봉돌이 해 준다. 빨리 내릴 수 있고 천천히 내릴 수 있다. 빨리 내리면 그 수심에 오래 머물게 할 수 있고 천천히 내리면 물고기의 경계심을 늦출 수 있다. 그럼에도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고 그 고기가 지금 거기 있는지는 더 모른다.

물고기가 있어도 수온과 물때가 맞아야 먹이활동을 한다. 때론 적합한 수온을 찾아 이동하고 자기 수온과 맞지 않으면 입을 다문다. 물때란 달의 인력에 따라 하루 두 번 들고 나는 조수를 말하는데 보름, 그믐에 빠르고 상현, 하현에 느리다. 조류 속도는 물속 지형에 따라 또 달라진다. 그 속도에 따라 채비 내리는 기술은 더 복잡해진다. 조류는 물고기 먹이활동을 활발하게도 하고 입을 다물게도 한다. 조과(釣果)의 최대 변수인 물때를 사람이 조절할 수 없다. 그래서 낚시인에게 물때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 동네 하도리 굴동에 낚시 잘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를 해신(海神)이라 부른다. 함께 낚시하다 입질이 없어 물었다.

“물때가 언제입니까?”

초들물, 중들물, 끝들물 가운데 언제 입질이 활발하냐는 질문이다. 해신이 대답했다.

“물 때가 있어요.”

“예?”

“한 마리가 물면 계속 물어요.”

고기가 물 때가 물때란 말이다. ‘물때’를 물었더니 ‘물 때’로 답했다.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언제가 물때라고 함부로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낚시란 고기가 물 때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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