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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권기석] 폴리페서의 멸종 조건



오세정 바른미래당 의원이 서울대 총장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을 관두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한국 정치에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행보가 폴리페서의 멸종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오 의원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과학인재 영입 차원이었다. 겸직 금지 원칙에 따라 서울대 교수 자리에서는 물러났다. 그는 지난 12일 바른미래당의 싱크탱크인 바른미래정책연구원 원장에 임명됐다. 9일 뒤인 21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오 의원은 왜 의원을 그만두고 서울대 총장이 되기로 했을까. 수입을 알아보니 국회의원과 서울대 총장 모두 연 1억원대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남은 임기를 따졌을 때 국회의원은 1년7개월 정도 더 할 수 있지만 서울대 총장은 4년 재임이 가능하다. 그가 2010년과 2014년에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낙마한 일을 상기하면 이번 결정이 이해될 것도 같다. 그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서울대가 나를 키워준 것을 생각하면 내가 가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직업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개인의 자유다. 바른미래당 입장에서 그의 사퇴는 외부 인재 영입 실패로 귀결된다. 바른미래당은 비례대표 후보 리스트를 보고 정당투표를 한 유권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 다행인 점은 폴리페서가 앞으로 줄어들 것이란 기대를 가져볼 만하게 됐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다음 총선 공천에서는 이런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자신의 유력한 경쟁자가 대학 교수 출신임을 알게 된 예비후보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당 지도부를 찾아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임기 도중 배지를 던져 버린 오 전 의원 사례를 벌써 잊었나. 교수 대신 나를 공천해 달라.” 다른 정당도 대학 교수를 영입할 때 더 신중해질 가능성이 크다.

폴리페서 멸종의 조건은 하나둘 갖춰지고 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의 주역인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은 교수 출신이다. 이들은 전문성을 발휘하기는커녕 권력자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나라를 망쳐 놨다. 다른 한편으로 교수 출신을 잘못 기용하면 크게 실패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문재인정부에서 교수 출신 장관이 줄어들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8월 발표한 2기 내각 장차관 9명 가운데 대학 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논문 검증을 통과할 교수를 찾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교수도 별 것 없더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폴리페서의 멸종을 바라는 이유는 이들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사이 우리 학문의 후진성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기초과학과 사회과학은 세계 톱 수준과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 주 노벨과학상 발표가 예고돼 있는데 국내 학자의 수상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여러 다른 배경이 있겠지만 연구보다 대학 밖 세상의 감투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이에 매달리는 교수들과 그들이 조성한 풍토가 문제 원인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교수가 정치와 행정에 참가할 길을 아예 막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 택한 길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누구나 인생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 다만 교수직을 유지한 채 정·관계를 들락날락하는 행태는 열심히 연구하는 주변의 교수와 학생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폴리페서가 사라질 수 있는 여러 조건이 형성되고 있으므로 이참에 겸직 금지의 원칙을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 대학 교수가 정무직 공무원이 되면 교수직에서 사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경우에만 이 원칙이 적용된다. 19대 국회에서 비슷한 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국회의원 누군가 나서서 이 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 달라.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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