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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정의로운 국가와 권력의 위선



스스로 낮춘 인사 검증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청문 후보자들을 무조건 임명하는 문재인 정권
내가 하면 정의이고 남이 하면 불의라는 ‘내정남불’이
정의로운 국가의 가장 큰 적이다


이 정권의 트레이드마크는 ‘도덕성’과 ‘정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대통령의 취임사는 새 정부의 핵심 테제였다. 이른바 촛불정신은 정의의 은유였다. 그 정신을 내세워 적폐 청산이 국정과제 1호가 됐다. 결국 두 전직 대통령과 많은 사람들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전 정권의 비도덕성과 현 정권의 도덕성을 대조시키는 도덕적 순결주의 전략은 높은 국정지지율의 원천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보수 진보를 떠나 정권이 도덕주의를 내세우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철학적으로는 데이비드 흄에게 공감하면서 배운 생각이다. 그에 의하면 도덕과 정의는 공동체의 문화적 진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자생적 질서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 국가나 정치인들이 인위적으로 재단해 전유물로 삼게 되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미덕을 훼손하는 권력의 무기로 변질된다. 도덕과 정의를 내세워 통치하면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은 늘 이 유혹에 빠진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정의로운 것을 강하게 할 수 없었던 우리는 강한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만들어왔다”고 고백한 바로 그 내용이다. 도덕과 정의의 사도는 비도덕과 불의로 규정한 것에 거침없이 칼을 들이댄다. 금도를 꼭 지킬 정치적 이유도 없다. 권력의 칼은 행위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겨냥한다. ‘보수’와 ‘재벌’이 그 제물이다. 전직 사법부 수뇌들도 그 과녁에 들었다.

도덕과 정의를 앞세운 국정의 중심적 특징은 여론을 등에 업은 권력의 직접적 사용이다. 여론의 지지라는 명분 아래 권력은 검찰과 공정거래위를 하수인으로 쓴다. 표적 수사와 감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직접적 권력을 억제하고 매개적 권력을 중시하도록 가르치는 대의제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정신은 바래진다. 대신 광장 민주주의에 기댄 포퓰리즘과 의사 전체주의가 똬리를 튼다.

그러나 정의를 앞세운 국정은 ‘권력의 위선’이라는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권력과 정의는 먼 길을 함께 여행하기가 힘들다. 위선이라는 장애물은 이 정권도 넘기가 버거워 보인다. 스스로 낮춘 인사 검증 기준마저 청문 후보자들은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전 정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을 임명하면 그렇게 비난했던 그 사람들이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 식으로 국회 동의와 관계없이 무조건 임명한다. 원칙의 상징인 대법원장조차 이를 따라 한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헌법재판관이 위장 전입을 여덟 차례 하고 국회가 청문보고서 채택도 하지 않았는데 아랑곳없이 임명된다. 사법부를 ‘진보 동색’으로 만드는 큰 그림에 도덕성 시비쯤이야?

이 정권 아래서 민변과 국제법연구회 출신이 아니면 최고 법관이 될 꿈은 접는 것이 좋다. 청와대가 모든 인사권을 틀어쥐고, 공공기관의 임원들을 대선 공로자들로 내리꽂는 관행 역시 변함이 없다. 바른미래당의 발표에 따르면 하루 한 명꼴로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졌다. 전광석화 같은 공영방송의 장악과 노골적인 코드 방송은 보수정권이 아마추어였음을 확인시켜준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건도 정의로운 국가의 위선을 드러낸다. 자료 취득의 적정성 문제를 떠나 정권의 대응은 협량하다. 즉각 검찰을 불러들이고, 검찰은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의원실을 쏜살같이 압수수색한다. 업무추진비 사안에 대한 청와대의 변명은 군색하다. 공무원들은 주말에 일을 하더라도 클린카드는 쓰지 않는다. 누구나 지키는 규정이다. 청와대는 365일 일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주말에 일하는 공무원은 숱하다. 자신만 예외가 되면서 어떻게 전체 공무원들에게 규정을 지키라고 할 수 있을까? 임용되기 전 비서관들의 수고비를 세금으로 줬다고? 고위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들이 공적 영역에 대한 도덕적 열정이 있다면 임용되기 전에 한 일은 당연히 봉사로 간주해야 정상이다.

이전 정부들이 하지 않았던 일에 편법으로 세금을 썼다면 계면쩍어하는 것이 도리이지, 폭로한 야당을 ‘쩨쩨한 자’로 모는 프레임을 걸 일은 아니다. 국민 세금에 관한 한 쩨쩨한 일까지 챙기라고 보내준 대표들이 국회의원이다. 업무추진비로 김밥 먹었다고 감사원까지 동원해 쫓아낸 KBS 이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서 편의상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국민도 이해할 수 있다. 단, 권력이 겸손한 태도를 가질 때에 한해서다. “감히 도덕적으로 열등한 자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신을 공격하다니” 하는 심리로 대응한다면 권력의 오만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하면 정의이고 남이 하면 불의라는, ‘내정남불’이 정의로운 국가의 가장 큰 적임을 알아야 한다.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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