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세상만사-강주화] 이제 일찍 퇴근합시다



며칠 전 저녁 8시쯤 택시를 탔다. 예전이라면 지체될 시간인데 도로가 한산했다. 택시 기사는 “요즘은 다들 일찍 퇴근해서 이 시간에도 차가 많지 않다”고 했다. 지난 7월 주당 법정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 이후 생긴 변화일 것이다. 이 상황이 익숙지 않은 직장인들도 아직 꽤 있는 모양이다.

한 대기업의 40대 과장은 “후배들이 정시가 되면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난 왠지 그렇게 되질 않아 남은 일을 더 하게 된다”며 멋쩍어했다. 그가 퇴근을 머뭇거리는 이유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하지 못했던 그간의 경험이 누적된 탓일 것이다. 입사 초부터 10년 넘게 그렇게 일하다 갑자기 일찍 퇴근하려니 얼마나 낯설겠는가.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 일하는 건 일반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풍경이었다. 얼마 전 들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2016년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국내 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위해 내한했다. 첫 연주를 마친 무티는 단원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무티는 ‘열심’의 한 예로 이걸 들었다.

“전 세계 명문 악단 어디를 가도 단원들은 예정된 연습시간이 지나면 악기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 단원들은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눈을 반짝이며 지휘자를 주시하더라.” 무티의 눈에는 단원들 모습이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의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였을까. 아닐 것이다. 정해진 시간 자체가 없거나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없는 국내 예술계의 열악한 근무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유럽 악단 단원들이 재빨리 연습실을 떠나는 것은 메마른 열정의 발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근로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는 선진국의 일면일 수 있다.

노동시간을 엄수하면 서비스 이용자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 2015년 여름 미국에 출장 갔을 때다. 뉴욕 카네기홀에서 한국 가수의 공연을 보게 됐다. 공연 직후 홀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거의 관객들을 내쫓다시피 했다. 모처럼 한국인의 노래를 앙코르로 듣고 싶었던 교포들은 아쉬워하며 홀을 나서야 했다.

카네기홀은 노동조합이 상당히 발달돼 있는 곳이다. 홀 측은 직원들의 근무시간 초과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카네기홀 직원들도 집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것이고 친구와 약속이 있었을 것이다. 근무시간을 지키기 위해 손님에게 퇴장을 요구하는 직원이 나의 친구이거나 가족일 수도 있다. 영국에서는 불을 끄던 소방관도 교대시간이 되면 다른 소방관에게 소방 호스를 넘기고 집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다. 너무해 보인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안전하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선 소방관이야말로 정시 휴식이 절실한 직업이 아니겠는가.

주52시간 근무제 계기로 우리 사회도 제 시간에 퇴근했으면 좋겠다. 퇴근 후 남은 시간엔 각자 원하는 삶의 가치를 찾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빨리 너무 많은 일을 하는 데 길들여져 있었다.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59시간)보다 265시간이나 많다. 장시간 노동은 급속한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산업 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로사회의 피로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해 과로사로 공식 인정한 사람만 205명이다. 5년 전보다 35.1% 증가한 수치다.

벌써 10년 전, 가수 장기하는 ‘느리게 걷자’고 노래했다.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일에 빠져 바삐 살다보면 잎사귀가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도, 아이가 자라는 것도, 내 삶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도 놓치게 된다. 이제 좀 느리게 걷자. 김 과장님도 주저하지 말고 일찍 퇴근하자.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