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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배병우] 중국의 ‘불망초심’



그들은 젊었다. 영어를 잘하고 사고도 열려 있었다.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지난주 중국 정부가 주선한 현지 탐방을 다녀왔다. 이때 만난 중국 대표기업 직원들은 10여년 전 봤던 중국인들이 아니었다. 선전시에 위치한 글로벌 IT 공룡 텐센트. 이 회사 직원 평균 나이는 30세다. 필자 일행이 놀란 표정을 짓자 대외 담당 직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27세였다고 했다. 중국 최고 인공지능·로봇 기술을 보유했다는 UB테크 직원 대부분도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와 30대였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닷컴(JD닷컴)도 마찬가지였다.

벤처는 원래 젊은이들이 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텐센트는 시가총액이 3조800억 홍콩달러(약 440조3168억원), 징둥닷컴은 363억6000만 달러(40조7232억원)나 되는 거대 기업이다.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과 겨루는 세계적 기업의 주축이 이렇게 젊을 줄 몰랐다.

대외 개방이 처음 시작된 선전이라는 도시 자체가 특별했다. 다른 중국이었다. 선진국 어느 도시 못지않은 풍요와 여유가 넘쳐났다. 선전이 중국 경제 개발의 완성이라면 서부 내륙 충칭(重慶)은 그 진행형이었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분지로 둘러싸인 이 오래된 도시는 큰 공사장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뒤로 어디서나 보이는 게 거대한 크레인이다. 한국의 1970·80년대, 선전 상하이 등의 90년대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도시를 관통하는 장강 양안은 밤이면 마천루 불빛으로 불야성이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의 거점이 충칭이다. 신장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철도망이 여기서 시작된다. 장강 운하를 통해 미개발된 중국 서부가 세계 바닷길로 연결된다. 충칭 최대 산업단지인 양강신구가 그 배후기지다. 이곳에는 중국 서부와 유럽, 중앙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베이징현대차, 일본의 스즈키, 대만의 폭스콘, 미국의 휴렛팩커드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 있었다.

베이징에서는 변곡점에 선 개혁개방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중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일시적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역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14억 중국 내수시장의 능력을 키워 또 하나의 개혁개방, 자기개혁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접했던 중국 공식 입장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그 결기가 느껴졌다. 그는 (아편전쟁으로 제국주의 세력에 침탈당했던) 170년 전 중국이 아니라고도 했다. 한국 언론인들이 충칭과 글로벌 IT 기업을 방문하게 한 까닭을 알 듯했다. 충칭은 미국의 압박으로 줄어들 해외 시장을 대체할 14억 내수시장의 상징일 것이다. 텐센트 등 첨단 기업을 통해선 미국과의 하이테크기술전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 정부의 결기를 느끼며 방문지 곳곳에서 봤던 한 구호가 오버랩됐다. ‘불망초심 뢰기사명(不忘初心 牢記使命)’.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심하자는 뜻이다. 충칭의 자유무역시범지구에도, 새로 단장한 선전의 서코우개혁개방박물관 입구에도 이 구호가 걸려 있었다. 개혁개방 당시의 초심을 잃지 말고 경제 발전의 사명을 다하자는 의미로 다가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최근 칼럼에서 ‘트럼프가 틀렸다. 중국은 멕시코가 아니다’고 했다. 중국의 유례없는 고도성장은 거대한 공간과 인구에서 발생하는 ‘규모의 경제’의 이득이 생각보다 훨씬 막대하다는 걸 증명했다. 중국은 이 이점만으로도 결국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다. 거기다 ‘초심’과 ‘사명’을 강조하는 분별력 있는 리더십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한국이 걱정됐다. 문재인정부는 조금 덜 일하되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정책이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근면과 열정이라는 경제개발 당시의 초심이 적폐 취급을 받는 데도 한국 경제는 온전할까.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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