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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도 일자리 보헤미안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스크린골프장이 하나 있다. 이곳에 출석하듯 나타나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농업, 또는 농산물 가공업 4명, 목수 4명, 음식점 운영 3명, 펜션 운영 3명 등이다. 한 달여 배를 타고 나갔다 보름 정도 육지에 머무는 선원이 2명, 일찍이 20대 때 티켓다방을 운영하다 PC방을 하고 그것도 기계가 오래돼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문을 닫은 40대 실업자가 1명 있다. 손님들 직업이 제주 산업구조 구성과 얼추 맞는다.

농산물 가공업자 1명은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미국 메이저리그를 훤히 꿰고 있어 웬일인가 했더니 한때 직원 5명을 데리고 사설 스포츠 게임을 운영하다 단속에 걸려 접고 무 세척공장을 열었다. 무 세척공장은 제주에서 큰 기업에 속한다. 목수 4명 가운데 3명은 육지에서 왔다. 제주도 건축 수요가 늘어 육지에서 들어온 목수가 많다. 원주민 1명은 조립식주택을 하는데 최근 스크린골프장에서 특정한 일이 없던 이주민 1명과 함께 일한다. 스크린골프장에서 구인, 구직이 이뤄졌다. 펜션 운영자 3명은 모두 이주민이다.

스크린골프장 사장은 40대 중반으로 2년 전 수협 창고였던 100평 건물을 임대해 문을 열었다. 스크린방 4개와 연습장 5타석 규모다. 종업원은 따로 없고 스크린 프로그램 패스워드는 누구나 다 아는 ‘1111’이다. 손님들이 로그인하고 게임을 한다. 낯선 손님이 왔을 때 사장이 없으면 단골들이 안내하고 로그인해준다. 스크린골프장 손님 가운데 골프를 친 지 오래된 이도 있지만 1∼2년 된 사람이 많다. 이 스크린골프장에서 배운 사람들이다. 시골에 문을 연 스크린골프장이 골프인구를 늘리고 있다.

사장은 90년대 초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주공항 앞에서 ‘나라시택시’를 운전했다. 자가용 승용차로 손님을 태우고 제주 일주관광을 시켜주는 직업이다. 첫 손님으로 중년부부를 태웠는데 서귀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자가 제주에서 운전해보고 싶다고 해 운전대를 넘겨줬다. 공항에 도착하자 팁까지 주고 갔다. 알고 보니 자기 운전이 서툴러 보다 못한 손님이 운전한 것이었다. 지금도 고마운 그 손님을 잊지 못한다. 관광객들이 택시관광이나 자가용관광을 많이 할 때다. 당시 하루 대절에 8만원으로 한 달 벌면 웬만한 직장인 월급의 두 배는 됐다고 한다.

자가용관광은 불법 영업행위 단속이 시작돼 그만두고 중고차 매매업을 배웠다. 그때 승합차 베스타 중고를 20만∼50만원에 사 30만∼40만원 수리비 들이면 150만원에 팔았다. IMF 때 중고차가 많이 나오고 비싼 차를 싼 차로 바꾸던 시절이라 돈을 잘 벌었다. 20대 후반이던 그때 골프를 배워 심하게 빠졌다. 장사에 소홀해지고 빚이 늘어 그 사업도 접었다. 그리고 찾은 일이 페인트 일이다. 페인트 일은 지금까지 10년 넘게 하고 있다.

골프장 사장의 직업 변화에서 제주도 산업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자가용관광 운전 할 때 제주 관광 붐이 시작됐고 중고차 매매는 차량 보급 확대와 IMF 힘든 시절의 명암을 나타낸다. 페인트 사업은 건설경기가 활발함을 반영하고 스크린골프장은 육지사람 위주였던 골프산업이 제주 주민들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섬나라 제주는 경제 단위가 작아 산업구조 변화 주기가 빠르다. 그 변화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도 이리저리 떠돈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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