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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 AI시대, 기본소득이 해법일까



지난 8일 국회에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토론회’가 열렸다. 강병원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8명이 공동 주최하고 경기도·경기연구원이 주관한 자리였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는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환수해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으로 돌려주자는 취지의 세금이다. 현재 전국 평균 0.27% 수준인 토지 보유세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면 수십조원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국민들에게 엔(n)분의 1씩 배당하자는 게 골자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해 대선 예비후보 때 이 개념을 제시했고 지난달 열린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다시 거론했다. 이 제도는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서 부동산 자산 집중화에 따른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재산의 유무나 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현금을 말한다.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기계나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대량실업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런 시대에도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분배를 강조해 온 좌파의 주장처럼 보이지만 지지파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자유방임주의와 시장 제도를 통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도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본소득처럼 모든 이에게 ‘쿠션’이 돼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도 “로봇이 인간 능력을 능가하지 못하는 과제가 점점 더 줄어든다. 일종의 기본소득이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막대한 소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스위스에서 2016년 기본소득제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76.9%의 반대로 부결된 것도 재원 조달 방안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본소득 재원은 결국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 투기 소득에 대한 중과, 다국적기업 공조 과세나 국토보유세 등 새로운 세금 도입 등이 방안이 될 수 있는데 조세저항이 만만치 않아 가까운 미래에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재원 문제 말고도 논란은 있다.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이 결국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작은 정부’로 귀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정을 무한정 확대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필연적으로 사회보험, 사회수당, 공공부조 등 기존 복지 제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고 효과도 불분명한 기본소득 도입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은 복지 정책들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 제도가 양립돼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재정 상황을 감안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기존 복지 제도는 그것대로 강화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본소득이 지금은 생소하고 허황된 주장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 일자리 환경의 변화, 자산 집중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 등이 누적되면 기본소득이 본격적으로 소환될지 모른다.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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