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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준구] 청와대와 한국당의 공존



모든 정권은 야당 탓을 한다. 반대로 어느 야당이든 정권의 발목을 잡지 않은 적이 없다. 문재인정부와 야당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국회에 다당제가 들어서면서 각 야당을 대하는 청와대의 태도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국회 의석 분포 중 범여권은 더불어민주당 129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5석으로 148석이다. 바른미래당(30석)과 무소속 의원(7석·국회의장 포함) 중에도 범여권 성향 의원들이 있다. 의석의 과반은 차지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리고 112석(37.46%)의 자유한국당이 있다.

청와대와 한국당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이 지점에서 특별하다. 국회 과반 달성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제1야당, ‘패권 휘두르다 실패했으면’ 싶은 청와대. 각각 청와대와 한국당의 솔직한 속내가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대하는 고리는 외교·안보 사안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두고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와 일대일 영수회담을 가졌고, 여야 당대표·원내대표 간담회도 여러 번 개최했다. 국익이 걸린 외교·안보 분야의 문제라면 국회도 나서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가 불투명해지면서 청와대 내부에서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역시 중심에는 한국당이 있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하면 청와대와 한국당 사이 교감은 더욱 희박하다. 백일몽으로 끝난 협치 내각 제안은 민주평화당을 위한 것이었다.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가 한국당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우리 좀 그만 잡아가라”였다고 한다. 최경환 이우현 권성동 염동열 의원 등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는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가 정말 한국당 표적 수사를 지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정부처럼 사법 거래의 정황이 훗날 드러날 수도 있다. 다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석에서 이런 의혹을 여러 차례 정면 반박한 바 있다. 조 수석은 “검사 누구 한 명이라도 수사와 관련해 내가 전화를 걸거나 지시한 적 없다”고 단언했다. 적폐청산을 내세워 당선된 정부이니 검찰에 속도조절을 주문하기도 어렵긴 했을 것이다.

청와대가 보수야당을 대하는 태도는 검찰 수사가 아니라 정무 기능 축소에서 엿볼 수 있다. 정부 출범 직후 정무수석실 산하 치안비서관실을 폐지했다. 치안비서관실은 경찰 정보를 바탕으로 여야 의원의 민원 창구이자 일종의 감시 기능을 하던 곳이다. 정무수석실이 불과 두어 달 만에 부활을 추진했을 정도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끼쳤다. 청와대 2기 개편에선 정무수석실 산하 정무기획비서관실도 폐지했다. 한병도 정무비서관을 정무수석으로 승진시키고, 정무비서관에는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송인배 전 1부속비서관을 보임했다. ‘내 편’인 야당만 챙기기도 벅찬 상황이 된 셈이다.

이를 두고 국회의원과 당대표를 지내며 여의도 정치에 환멸을 느낀 문 대통령의 뜻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야정 협의체를 통한 시스템 협치와 국익을 위한 초당적 협력 아래 비공식적, 비제도적 거래는 안 하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일 리 없지만 어쨌든 청와대가 한국당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준 2007년부터 10년간 민주당이 헤맸던 것처럼 한국당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냉소도 깔려 있다.

인적 청산 철퇴를 눈앞에 둔 한국당은 개별 의원 앞날도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국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국민적으로 지지 여론이 높은 법안조차 국회에서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제1야당에 구애하지 않는 청와대, 그리고 그런 청와대가 망하기만 바라는 제1야당. 존재는 하나 서로에게 의미는 없는 공존은 2020년 총선 즈음에야 끝날 것 같다. 아예 필요 없어지거나, 정말 망하거나.

강준구 정치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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