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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손병호] 오죽하면 가짜뉴스



할 일이 태산인 정부·여당이 가짜뉴스 때문에 부산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를 엄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법무부는 가짜뉴스가 나오는 초기 단계부터 엄정 수사하겠다고 호응했다. 여당은 가짜뉴스대책특위까지 발족시켰다. 가짜뉴스는 말 그대로 가짜뉴스다. 그래서 나오지 말아야 하는 건 맞다. 그런데, 그걸 없애겠다는 여권의 일사불란한 모습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새 쫓는 데 미사일을 동원하는 느낌이다.

여권은 가짜뉴스를 민주주의를 망치는 독극물로 규정했다. 그런데 가짜뉴스를 접한다고 민주주의가 무너질까. ‘문재인이 금괴 200t 갖고 있다’ ‘북한이 국민연금 200조원을 요구했다’ ‘문재인이 치매 걸렸다’ ‘남북 도로연결은 남침용이다’. 다른 분야의 가짜뉴스들도 있지만 여권이 가장 히스테리컬하게 여기는 게 이런 이념성 가짜뉴스다.

그런데 따로 팩트 검증을 하지 않아도 너무나 뻔한 가짜뉴스들 아닌가. 그래서 뉴스라기보다는 언어유희나 현실 풍자로도 읽히고, 한편으로는 이런 걸 돌려보는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정도로 어이없는 뉴스는 대한민국 정도의 성숙된 민주주의에서는 자연스레 정화가 될 것들이다.

그래서 가짜뉴스는 독극물이 아니라 타이레놀에 가깝다. 일종의 진통제다. 문재인 정권이 무지 싫고,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간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이 잠시나마 고통을 잊으려고 먹는 진통제 말이다. 뉴스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지만 ‘그들만의 위로’의 한 방편이다. 오죽 괴로우면 그런 것들에 심취하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정부·여당이 거품을 물고 대응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가짜뉴스로 폄하한다고 덜 읽지도 않고, 뉴스가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정부·여당의 공식 대응은 오히려 가짜뉴스에 진실성을 더해줄 소지가 있다. 가짜를 생산해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은 몰아내야겠지만, 문제는 이런 뉴스를 소비하려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여권이 지금 할 일은 그런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끌어안는 일이다. 가짜뉴스들이 보수 결집의 재료로 쓰일 것을 우려해 ‘전쟁’에 나선다면 그 뉴스를 돌려보던 이들은 문재인 정권하에서는 영원히 남의 나라 국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가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제와 요란을 떠는 게 여권의 최근 달라진 인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즘 여권 사람들은 “결국 한 세대가 지나야 해결될 문제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끝끝내 반대만 하는 다수 장·노년층을 염두에 둔 말이다. 설득이 쉽지 않고, 오직 반대만 하니 결국 시간이 흘러 새 세대가 장·노년층으로 들어서야 해결될 문제라는 얘기다. 어쩌면 그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한 것처럼 들린다.

요즘 여당을 보면 야당마저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대선에 지고,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는데 여당이 다시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을 던지며 계속 약을 올리고 있다는 게 야당의 하소연이다. 격투기를 하다 져서 이미 수건을 던졌는데 여당이 중단하지 않고 계속 두들겨 패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조롱하니 남북 관계 개선이나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 통과 등에 맞장구를 쳐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 정부가 잘되고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개선되려면 역설적으로 가짜뉴스 소비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들에게 가짜뉴스 진통제 대신 새로운 치유제를 제공해야 한다. 장·노년층과 보수층을 상대로 현 한반도 국면에 대한 국정설명회 같은 게 마련돼야 하고, 야당한테도 몸을 낮춰야 한다. 30∼40%의 국민이 현 국면을 불안해하고 의심하니, 안심시키고 이해시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가짜뉴스의 내용을 들여다볼 때가 아니라, 가짜뉴스 소비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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