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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원재훈] 날마다 만우절?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할까. 심리학자 폴 에크만 박사는 하루에 최소 200번 정도는 거짓말을 한다고 밝혔다. 이런 연구 결과는 믿기 힘들다. 잠자는 시간 빼고, 아니면 잠자는 시간에도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200번이라니. 이 연구가 사실이라면 우리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 거짓말은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와 같은 귀엽고, 사소한 거짓말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루에 몇 번이건간에 어떤 거짓말은, 삶을 유연하게 하고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거미줄 같은 역할을 한다. 상황에 따라 어떤 거짓말은 지혜로운 말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과 상황이 진짜만 이야기하도록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피노키오가 탄생하고, 만우절까지 만들었을까. 그런데 어떤 결정적인 거짓말들은 인간관계를 치명적으로 파괴한다. 예를 들자면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 등이 그렇다. 이것은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사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어간다. 가짜뉴스도 정치적인 황색언론의 차원에서 우리 일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점점 깊고 넓어진다. 아주 작은 커뮤니티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들을 짜증나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정치적인 진실 공방, 증권가 정보지, 듣는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가는 유치원 교사의 자살을 비롯한 유치원 문제 등 엄청나게 많은 뉴스들의 진원지를 파고들어가다 보면 깊은 동굴 속에 음습하게 뱀처럼 웅크리고 있는 가짜뉴스가 있다. 어쩌면 하루에 최소 200번 이상의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가짜뉴스는 한 사회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는 언론의 순기능을 마비시키는 질병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가짜뉴스에 대해 백신이 개발되고 심지어 지미 웰스와 구글은 전쟁까지 선포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인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다. 고대 중국의 사마천은 이런 글을 남겼다.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가 가라앉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 이 글에서 여러 사람의 입과 비방은 한때는 유언비어, 요즘에는 가짜뉴스다. 명칭만 바뀌었지 본질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인간의 악함이라는 것이 그렇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참으로 한결같다.

최근에 나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어 힘들다. 이런 세상에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는 이 세상에 적어도 작가의 양심으로 보기에 진실인 것들을, 즉 그것이 비록 거짓말이거나 가짜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어떤 유용성을 주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는 그런 이야기나 노래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공인들 중에서도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를 뉴스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도 밝혀진 게 없는데 우물쭈물하다가 그대로 정신적인 사형선고를 받는다. 정치인, 예술가, 작가, 연예인 등등. 더 중요한 것은 오래전의 일인데도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안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이런 불지옥 속에 있는 마음에 날마다 들려오는 가짜뉴스는 기름을 붓는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날마다 만우절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거꾸로 세상과 뉴스를 보고 읽어낼 것이다. 이러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아니다. 이런 발상은 패배감을 들게 한다. 만우절은 만우절이고, 나머지는 그냥 정직하게 견디면서 살자. 날마다 만우절이라는 말이 가짜뉴스다. 그런데. 가짜와 진짜는 정말 뭘까. 그건 혹시 입장 차이가 아닌가. 사실과 거짓은 누굴 기준으로 하는 건가. 진짜는 무엇인가. 그것이 정의인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11월에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원재훈(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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