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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제주도 연착륙



제주에 이주하고 처음 만난 동네 주민은 우리 집 앞 바닷가 갯바위 쓰레기를 청소하는 할아방들이었다. 7∼8명이 이른 아침 바닷물에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를 청소한다. 해양수산부의 공공근로사업이다. 이들과 인사하고 음료수를 내기도 하고 잠시 집 구경도 시켜줬다. 그들도 바닷가에 집을 짓고 이주한 우리 사는 모습이 내심 궁금했다. 이들이 몇 달 전부터 나에게 5월 어버이날 마을 경로잔치에 오라고 초대했다. 돼지를 잡는다는 것이 이들이 설명하는 잔치 규모다.

경로잔치는 마을회관과 그 앞마당에서 열렸다. 청년들이 큰 불판에 돼지고기를 굽고 할망들이 회관에서 출장 뷔페로 식사를 한다. 남자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윷놀이를 한다. 제주에서는 동네 모임이나 애경사 때 반드시 윷을 논다. 나는 돼지고기에 소주도 마시고 윷놀이판을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회관에 앉아 차려주는 음식도 먹었다. 내가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그들이 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눈길을 느낀다. 아침에 만나던 할아방들이 나를 주변에 소개한다. 나는 이렇게 우리 동네 사교계에 데뷔했다.

집의 돌담 쌓는 일을 동네 석공에게 맡겼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 석공을 보고 들어온다.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을 부른다. 구경하는 사람이 5명이 됐다. 석공은 일을 계속한다. 우리는 얘기하며 논다. 이들이 모두 이 동네 ‘별방축구회’ 선수들이다. 나도 축구를 좋아해 얘기가 한없이 이어졌다. 내가 가게에 가서 맥주를 사왔다. 며칠 뒤 축구 얘기 하던 사람이 방금 잡아 손질을 마친 숭어 한 마리를 들고 카페로 들어왔다. 카페 손님들이 그 광경에 즐거워한다. 동네 사람들과 나는 이렇게 주고받기 시작했다.

추석이 됐다. 동네 사람이 명절음식을 한 보따리 싸왔다. 제주 명절음식은 떡, 산적, 전 등이다. 산적은 돼지고기, 쇠고기, 고래고기로 구성된다. 고래고기는 부서지지 않게 꾸덕꾸덕 말려 끼우는데 약간 숙성이 돼 고리고리한 맛이 독특하다. 보내준 이에게 사과를 싸들고 가 인사하며 산적의 생선이 고래고기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나는 그 맛이 좋았다고 말했다. 설날이 되자 잔치음식을 또 가져왔다. 이번에는 고래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여자들은 음식 칭찬에 약하다.

어느 날 저녁 누군가 집 앞 갯바위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내가 내려가 태우지 말라고 했다. 그는 여기 사람들은 늘 이렇게 한다며 계속했다. 나는 신고하겠다고 했다. 신고하려면 하라며 화를 냈다. 나는 그의 차 사진을 찍고 들어왔다. 잠시 후 그는 불을 끄고 떠났다.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며칠 뒤 이장이 손님과 카페에 왔다. 나를 보더니 그날 일을 얘기하며 “외지 사람도 하지 않는데 동네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니가 잘못했구먼”이라고 그에게 말했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 젊은이가 다가와 그날 ‘싸운’ 사람이 자기라고 말했다. 해녀들이 일할 때 남자들이 화물차나 경운기를 몰고 와 해산물을 실어가느라 기다린다. 내가 바다로 내려가면 그가 차에서 내려 캔커피를 건넨다. 지금은 친해졌다.

육지 친구들이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냐고 묻는다. 제주의 배타성이 다른 곳 못지않다고 알고 있어서다. 나는 대답한다. “여기 나보다 나쁜 사람 없어. 가만히 보면 내가 제일 나쁜 놈이야.”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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