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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민지] 고독한 죽음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5년 전 서울 마포구 원룸텔에서 한 청년이 목숨을 끊었다. 홀로 지내며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보려던 30대 취업준비생이었다. 청춘이 스러진 자리에 비통함은 없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주검이 실려나갈 때 누구도 애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이 고독사는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의 마지막을 정돈한 유품관리사 김새별은 저서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 이렇게 적었다.

“누구에게도 당신의 이웃이던 젊은이가 죽었다고 알릴 수 없었다. 청년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진 채 현장은 정리됐다. 무슨 일인지 묻는 이들에게 있지도 않은 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애도는커녕 개를 굶어 죽게 한 사람으로 고인을 비난받게 만들었다.”

가여운 청년의 죽음이 개의 죽음으로 둔갑한 까닭은 ‘노비즘(Nobyism)’이란 용어가 설명해준다. 쓰레기를 공공장소에 버리는 건 괘념치 않으면서 내 집 앞에 버리는 건 용납하지 못하는 심리,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가 자신에게 닥치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개인주의를 뜻한다. 사람들은 외로운 죽음을 가련히 여겼겠지만 내 옆집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길 바랐다. ‘사람이 죽어나간 곳’이란 소문을 걱정한 건물주는 유품관리사에게 철저한 입단속을 당부했다. 지난했던 삶은 그렇게 소리 없이 졌다.

인구와 가족의 변화가 빨라지며 고독사 위험군은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청년층을 위험군에 편입시켰다. 2015년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전국 22.6%, 서울 37.2%였다. 전체 연령층의 12%보다 훨씬 높다. 오늘날 청년은 가난하고 가난은 그들을 외롭게 했다. 4년 전 부산에서 병사 17일 만에 발견된 젊은 여성은 고독사 직전 휴대전화로 날아든 스팸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그만큼 단절된 삶을 살았다. 불확실한 미래는 인간관계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고독사 현장에 흔히 보이는 유품은 라면봉지와 술병이다. 전문가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누구도 완벽하게 혼자일 수 없는 복잡한 세상에서 사회적 외톨이는 계속 늘고 있다. 각박함은 단절을 택하게 했고 외로움은 벼랑 끝에 서게 했다.

혼자 맞는 죽음은 모두에게 잔인하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다 목숨을 끊은 지 두 달 만에 아버지에게 발견된 청년의 마지막이 그랬고, 유학 간 딸에게 암 투병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세상을 등진 어느 아빠의 삶이 그랬다. 영화 ‘스틸라이프’가 던지는 메시지도 같았다. 22년간 고독사한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공무원 존 메이는 정작 이웃의 외로운 죽음을 알지 못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엄밀히 따지면 영화 속 적막한 공간이다. 그곳엔 결핍만이 가득했다.

문제는 명확한데 해답이 없다. 이럴 땐 차근차근 깨달아가는 것이 답일 수 있다. 몇 해 전 혼자 살던 이가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갑자기 힘을 쓸 때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발살바 효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주검을 들어낸 자리를 정돈하는데 한 여인이 고인의 집에 들어섰다. 떨리는 손에는 국화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자신을 옆집 사는 이웃이라 소개한 그는 그동안의 무관심이 미안해 찾아왔다고 했다. 고독한 죽음의 마지막을 배웅해준 이 여인은 앞으로 다른 외로운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서로에 대한 관심을 통해 비로소 지켜진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닌 무관심이다. 작가 김애란은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 이렇게 썼다.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의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 뒤의 남자가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무관심은 마음의 죽음을 뜻한다고 했다. 외로운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여야 한다. 언젠가 내게 드리울 하루이자 내 가족이 겪을 어느 날일 수 있다. 혼자 사는 이웃이 이틀만 안 보여도 신고해 달라는 경찰의 당부가 있었다. 청년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다. 이런 신고가 들어온 대다수 현장에서 쓸쓸히 식은 주검을 마주했을 테니 이들의 부탁은 조금도 가볍지 않다.

‘괜찮아, 잘될 거야.’ 청년이 개의 죽음으로 둔갑해 떠난 방에는 이렇게 적힌 메모가 뒹굴고 있었다. 꾹꾹 눌러썼을 글귀에 제법 희망이 담겨 있어 더 아프게 읽혔다.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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