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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에서] 유치원 개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과연 제대로 될 것인가. 사립유치원 이슈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 지난달 어느 기사에서 읽은 교육계 인사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워낙 시끄러우니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는 듯하죠.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그는 사립유치원의 힘을 말하고 있었다. 선거에서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은 한껏 끓다 이내 식는 여론을 이겨낼 거라고 봤다. “시간은 유치원 편”이라고 했다. 유치원 비리가 공개되고 한 달 반이 흘렀다. 그의 예상대로 여기저기서 ‘유치원의 힘’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이대로 지속 가능한가’ 토론회는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이 주최했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에서 1000여명이 참석했다. 홍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해주는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들들 볶아요. 솔직히 말해서 잘못된 게 있으면 법이 잘못된 거지 여러분(사립유치원 원장)이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유치원 3법’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발이 묶였다. 한국당은 12월에 자체 법안을 내겠다며 처리를 막고 있다. 중요한 문제여서 그런다는데 이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뜻이 강해 보인다. 여야 원내대표가 21일 사립유치원 관련법을 정기국회 중에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견까지 조율된 건 아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념이 끼어들었다.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란 한유총 논리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보수진영에서 커지고 있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장은 “정부 지원금은 학부모에게 주는 돈이니 사립유치원이 이를 받아 어디에 쓰든 자유다. 명품 백을 사도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을 비롯한 여러 학부모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유치원 3법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보수 성향인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국가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을 사립유치원에 적용하는 법안은 사립의 특성을 무시한 전체주의적 악법”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은 유치원 3법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좀처럼 정치색을 띠기 어려운 유치원 문제가 여야 정쟁의 대상이 됐다. 비리를 막자는 반부패 논의였는데 사유재산과 공공성을 둘러싼 보수·진보의 이념 대결로 번지려 한다. 세금이 쌈짓돈처럼 쓰였다는 사실에 분노한 여론이 비등할 때는 잠잠하던 이들이 여론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졌다 싶은지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그것도 어지간해선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진영 갈등의 쳇바퀴에 말려들어가는 형국이 됐다. 연간 2조원 넘는 세금이 투입되니 회계와 감사를 철저히 하자, 사립 초·중·고교도 다 에듀파인을 쓰는데 왜 사립유치원만 예외여야 하느냐는 지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상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일이 이토록 지난한 까닭은 교육계 인사가 말한 이익집단의 힘이 아니면 잘 설명되지 않는다.

1995년 결성된 한유총은 여러 차례 힘을 과시했다. 2002년 공립단설유치원 확충 반대, 2004년 유아교육법 입법, 2012년 유치원 회계 정비 저지, 2016년 재정 지원 확대, 2017년 회계감사 강화 저지 등 집단행동과 입법로비를 통해 번번이 목적을 달성했고 이번엔 유치원 3법을 막으려 한다. 사실 6년 전 누리과정 도입 때 법제화했어야 할 일인데 사립유치원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 뒤늦은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유치원 비리를 9대 생활적폐에 포함시키며 대통령까지 나섰다. 그래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제 정부와 국회가 말하는 ‘개혁’은 기대하지 말자.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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