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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이동훈] 문제는 혁신이야!



문재인정부가 경제수장만 갈아치우고 경제정책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은행이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예상(2.9%)보다 0.2% 포인트 내려간 2.7%로 발표하자 잠재성장률 범위(2.8∼2.9%)를 하회하는 것 아니냐며 화살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로 돌리는 분위기다.

아직 원인이 이거라고 명확하게 나온 것은 없다. 지난 12일 강신욱 통계청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현 정부 출범을 전후한 지난해 2분기(4∼6월) 언저리를 경기 정점으로 추측한 것을 보면 정확한 경기 국면 진단이 나와야 원인 파악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먼저냐’ 하는 논쟁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논쟁만큼이나 답을 찾기 힘든 문제다. 출발점이 다를 뿐 도식적으로는 둘 다 ‘선순환 구조’다. 소득이 늘어 소비가 늘면 생산이 증가해 성장에 도움을 준다. 반대로 경제가 성장해 나눠줄 파이가 커지면 소득도 늘고 소비, 생산도 는다.

다만 흥미로운 한 가지는 문재인정부가 벤치마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소득주도성장이 오늘날 미국 경제 번영의 시발점이 된 포드자동차에서 잉태했고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1913년 작업의 표준화와 분업으로 대표되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고안했다. 또 노동자 임금을 일당 2∼3달러에서 5달러로 올리고 노동시간도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였다. 자동차 모델인 T형 한 대의 조립 시간도 5시간50분에서 1시간38분으로 줄어 생산량이 1910년 1만9000대에서 1914년 27만대로 늘었다. 대당 가격은 1950달러에서 290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바뀌고, 임금이 높아져 여유를 갖게 된 노동자들은 경제적 풍요를 만끽한다. 미국의 중산층은 이때 만들어졌다. 소득을 늘리고 혁신까지 가미한 ‘포디즘’은 향후 서구 제국의 경제정책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포드의 컨베이어 공정은 한계점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단순 반복작업으로 결근율이 높아지는 등 노동자 개인의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장기적으로는 과도한 임금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소득주도성장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 것인데, 생산성 증대를 위한 끊임없는 혁신이 정책 성공의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제정책 논쟁을 보면 혁신을 위한 논의나 대안 제시는 없고 무조건 반대하는 편 가르기만 난무한다. 박근혜정부 때를 돌아봐도 ‘고용 없는 성장’ 문제가 최대 골칫거리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의 고용위기와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 성토 대상이 성장에서 소득(분배)으로 바뀐 것뿐이다.

정부도 경제주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설득력이 부족한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 9월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있던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개혁연구소 주최 강연에서 이를 조정 메커니즘이 결여된 때문으로 진단한 바 있다. 프레시안이 정리한 김 위원장의 지적은 정권이 두 차례 바뀐 지금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1960년대 이후 30년의 성장구조가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경제주체 사이도 수직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이명박 대통령도, 조선일보 사주도 이젠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헤게모니는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게 막는 비토권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다이내믹하지만 정체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힘만 가진 세력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지도자가 그 힘을 모아가는 조정 메커니즘을 리더십으로 발휘하지 못하면 남은 건 실패뿐입니다.”

이동훈 경제부 선임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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