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보헤미안 랩소디와 한국교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그 열기는 아직도 뜨겁다. 누적 관객 500만명도 넘어섰다. 역대 음악영화 흥행 2위 ‘미녀와 야수’(2017년 513만명)의 흥행 성적을 깼고 1위인 ‘레미제라블’(2012년 592만명)의 기록까지 깰지가 관심사다.

1970, 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전설의 밴드 ‘퀸’이 비수기 극장가를 ‘떼창’으로 물들이고 있다. 하지만 당시 평단은 저속한 가사와 상업적 감성의 멜로디가 강한 퀸의 대중적 지향성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퀸의 리더인 프레디 머큐리가 이란계 이민자였던 것도 편견의 이유였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신조어 떼창의 위력이 놀랍고 대단하다. 영화 속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퀸의 명곡들에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치고 발을 구르며 열광한다. 혼자 영화에만 몰입하겠다며 조용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주변 관객의 흥을 깨는 ‘적폐’로 간주될 판이다.

떼창은 우리말 ‘떼’와 한자 ‘창(唱)’이 결합된 합성어다. 사전적 의미는 ‘목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의 큰 노랫소리’가 된다. 여럿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측면에서 합창(chorus), 제창(齊唱), 싱얼롱(sing-along)이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떼창의 기원은 정확히 유추할 수 없지만 학생운동의 중심 세대가 이끌던 청년 문화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캠퍼스 대동제와 촛불집회, 전국민대회 등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솔아 푸른 솔아’ 등과 같은 민중가요가 학생운동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함께 불렸다. 민중가요 일부가 1980, 90년대 들어와 대중음악에 스며들어 대중화됐다는 점 등으로 미뤄 학생운동과 청년문화가 일정 정도 떼창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떼창 문화를 몰고 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바로 그 제목을 가진 노래는 정작 퀸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80년대에 한국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돼 자유롭게 들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주인공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는 화려하게 부활해 전설을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해체주의적 사고를 자극하고 탈규범과 반항을 부추긴다. 영화는 가정을 등지는 머큐리로 시작된다. 아버지의 종교적 신념(조로아스터교)인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 말’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이탈을 꿈꾼다. 물건을 나르는(택배원) 일을 접고 음악에 몰두하다 끝내 기존 음악의 장르를 파괴하고 클래식과 팝 그중에 오페라와 록의 오묘한 조합을 추구한다. 결국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도 탈출을 감행한다. 동성을 선택하는가하면 그룹을 해체하고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죽음까지 초월하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대반전을 보여줬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것을 동료들에게 고백하고 끝까지 음악에 몰두하다 91년 11월 24일 45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머큐리는 가정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종교의 선한 목적도 거부했다. 현실의 문제를 무작정 벗어던지고 무절제한 삶에서 튀어나온 음악을 추구했다. 사랑의 가치를 허물고 쾌락과 방종에 빠진 사랑을 연출했으며 공동체 의식을 벗어나 해체주의 철학을 실천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대중은 거룩한 영성과 예술적 가치를 넘어선, 감성이 넘치는 ‘대중가요’를 좋아한다는 점과 또한 세대를 이어가며 함께 따라 부르던 익숙한 노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의 예배와 행사에서 이런 감흥이 사라졌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손뼉을 치며 때로는 몸을 흔드는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다시 뛰놀 수 있도록 하면 안 될까. 과거 기독교 부흥운동은 뛰어난 설교자들을 통해 이뤄졌다. 이들은 대중적 구술 언어와 일상을 보는 예리한 시선, 그리고 청중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감정적 언변의 달인들이었다. 창의적이며 역동적인 예배가 그리워지는 초겨울 문턱이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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