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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이경훈] 청계천에 물을 채우는 상상



청계천이 복원된 지 어느새 15년이 됐다. 우려했던 교통난도 그리 심각하지 않았고 도심에 물길 바람길을 열어 한결 시원해진 느낌이다. 실제로 한여름에 열섬현상이 완화되는 등 미세기후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우중충한 고가도로 그림자에 갇혀 있던 주변도 활기찬 경관으로 바뀌었고 근사한 산책로가 생겼으며 지방의 여러 도시가 비슷한 하천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중심의 하천 복개와 고가도로를 헐어내고 보행 중심으로 도시 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2018년 청계천의 하루평균 방문객 수가 2006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게 됐다. 처음의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한 번쯤 찾았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며 다시 찾지 않게 된 것이다. 청계천이 도시 공간에 활력을 주고 시민의 일상에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청계천에 물을 인도 높이로 채우는 상상을 해본다. 어두운 구덩이나 다리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도심 거리의 높이에서 물을 바라보고 만져보고 즐길 수 있겠다. 지금처럼 호젓한 산책로는 아니겠지만 도시의 공간과 사람과 물이 더해져 활기 있는 산책로가 되겠다. 거리의 벤치에 앉아서 햇빛을 반사하는 물을 바라볼 수 있겠고 난간에 기대어 물에 비친 도시의 그림자를 볼 수도 있겠다. 기술적으로는 이중하천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지금의 청계천은 홍수를 대비해 깊고 넓게 파고 옆으로는 우수관이 지나서 물이 차면 산책로 쪽으로 흘러넘치는 구조다. 이를 아예 큰 터널을 만들어 아래는 비워두고 그 위에 적당한 수심의 물을 흘려보내는 거다.

청계천의 성공적인 모습의 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기도 하다. 우선 여름철 홍수에 갑자기 물이 차게 되면 산책로가 위험해질 수 있다. 몇 년 전 쏟아지는 우수관문 옆에서 겁에 질린 시민의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둘째 수표교 같은 역사유물을 제대로 복원할 수 없는 점이 있다. 기껏해야 무릎 높이의 원래 청계천에 있던 다리는 지금의 높이로 복원할 경우 교각이 지나치게 길쭉해지거나 아래에 콘크리트 기둥을 덧대야 하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셋째로 장애인들의 접근이 여전히 여의치 않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엘리베이터 2대와 19개의 경사로가 있지만 언제나 멀기만 하다. 전체에 걸쳐 장애인 시설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 공공공간이 ‘안전요원’들의 수고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강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것은 필요한 비용이라고 치더라도 도시 공간이 수십 명의 인력에 의해 안전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둑어둑한 다리 밑 공간에서 이제까지 범죄 한 건 없이 지나고 있는 것은 사실 막대한 행정의 힘과 인력의 투입 결과이다. 인도 높이로 물을 채우는 것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산책이라는 단일의 이유가 사람을 언제까지나 모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리가 가지고 있는 활기와 수변공간을 같은 높이에서 결합할 때 자연감시가 작동하며 지속가능한 공공공간이 된다.

20세기 중반 무조건 철거와 자동차 중심의 도시 건설에 맞서 뉴욕의 맨해튼을 지켜낸 제인 제이콥스는 유명한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의 첫 장을 인도가 거리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는 ‘거리의 눈’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거리에 다양한 시설을 배치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감시, 관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시가 잠재적 범죄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른바 ‘자연감시’이다.

청계천은 구시대의 대표적인 자동차 중심시설을 보행자시설로 전환하는 보행 중심의 패러다임이라는 점에서 서울역 고가공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역 고가공원도 개장 2년 만에 방문객 수가 40%가량 감소했다는 걱정스러운 보도가 있다. 거리의 인도와 같은 높이에서 걷고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사람을 모으고 지속가능하다. 제이콥스의 말에 따르면 ‘인도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공공공간이며 필수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변 카페에 앉아 물놀이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근사한 나를 상상해 본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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