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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법률가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수사권 조정 문제제기 옳지만
김학의 사건에서 보듯 검찰의 ‘잘못된 통제’는 누가 통제하나
검경에 대한 견제와 균형 위해 보다 확실히 개선된 장치 필요
검찰은 오만한 집단 의사표시 말고 법률가다운 언행 보여야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해 작심 발언을 했다. 발언 내용과 수위, 표정 그리고 양복 웃옷까지 벗어 흔든 행위를 보면 상당히 준비를 많이 했고 고심한 흔적이 드러난다. 그동안 검찰이 정치 중립을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했고 수사권 조정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반성도 했다. 그리고 경찰이 수사 착수·종결권을 갖고 국가정보권까지 확보하면 국민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아주 크고 민주주의 원리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나 그 과정, 언론을 활용한 행위 등 몇몇 사례를 볼 때 불편한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발언을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검찰총장 문무일은 법률가이자 검찰 조직의 꼭대기에서 검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가 어디에 더 무게를 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마음속에서 대단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법률가 입장이라면 대한민국 공직자로서의 충정이, 검사 대표에 무게를 뒀다면 현행법과 관행의 테두리 안에서 검찰 이익이 덜 침해받도록 조직이기주의가 각각 더 작용했을 것이다.

우선 법률가 문무일은 아주 절제되고 신중한 언어를 사용해 문제점을 잘 제기했다. 정권 쪽에선 항명이니 하지만 그런 냄새가 안 풍기게끔 집단 위세를 드러내지 않고 현명하게 설명했다. 한 기관의 수사 착수와 종결, 수사와 정보 기능 독점은 어마무시한 권력이다. 정치권력이 이것과 짜고 하는 행위가 독재다. 이런 걸 고치자고 한 게 권력기관 개편이다. 그래서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 기능을 없애고, 검찰의 독점적 권능을 쪼개자는 것이다. 그걸 그대로 아직 수준 미달(각종 추문에서 드러나듯)인 경찰에 주자는 것이니, 확실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검찰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상당히 민망하다. 독재국가 아니라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수사·기소 권력’을 맘껏 휘둘러온 특권 조직이 검찰 아니었던가. ‘내가 그런 짓 해봐서 아는데 이건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직으로 될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 원리에 위반돼. 그러니 경찰이 다 가져가는 건 안 돼’라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가로서 잘 지적했고, 더 나은 개선을 위해 논쟁을 촉발한 긍정적 역할을 했다.

다음은 검찰총장, 즉 검사 대표로서의 문무일. 그의 말을 요약하면 수사 착수와 종결 권한을 분리해야 하며, 검찰이 경찰 수사를 통제할 권한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세한 것은 법률전문가들 또는 정치의 몫이니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다. 시작과 끝의 분리는 견제와 균형을 구현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인 점에선 맞는다. 그런데 그것이 꼭 검찰이어야 하는가. 검찰이 봐주기 위해 모른 척하거나, 의도적으로 무리하게 기소하려 한다면 어떻게 통제하나. 전 법무차관 김학의 사건은 검찰 통제가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경찰의 기소 의견에도 왜 김학의를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했나. 그땐 몰랐다고? 모른 건가, 일부러 혐의를 들여다보지 않은 건가. 아니면 권력의 뜻에 따라 무혐의에 유리한 법조항만 들이밀었나. 이런 잘못된, 의도된 통제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있는가. 검찰의 나쁜 수사 통제는 어떤 방법으로 통제하나. 사법 체계에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사·기소·재판의 주체를 명확히 분리하고, 전 단계의 실수나 잘못을 다음 단계에서 바로잡는 제도를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형사사법체계가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그게 오랫동안 잘못 작동됐다면 국민이 체계를 바꾸자고 요구할 수도 있는 게 민주주의 정치다.

문무일이 옷을 흔들며 “어디서 흔드는 겁니까”라고 묻는 장면은 검찰의 웃픈 현실이다. 정권이 쥐고 흔드는 건 보수나 진보 정권이나 늘 지적되는 바다. 그렇다면 검찰 조직은, 검사 개개인은 권력이 흔들면 그대로 흔들리는 조직이고 공무원들인가. 아니 흔들기를 기다렸다 적극 부응해 충견 노릇 한 건 아닌가. 마치 그걸 인정하는 것 같다. 정치권력이 흔드는 통로도 대부분 청와대 등의 검찰 출신들이다. 결국 권력 이너서클에 들어가기 위해, 개인 영달을 위해, 퇴직 후 자리나 부를 위해 그랬다고 비난하면 뭐라고 대답할 텐가. 물론 많은 검사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정의로운 직무에 충실할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면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에 대한 논쟁이 시작될 것 같다. 문무일의 문제 제기는 지극히 맞지만, 검찰 잘못에 대한 여론은 지극히 싸늘하다. 그러니 행여 검찰 고위직들이 집단으로 행동하거나 의사 표시를 한다면 바로 밥그릇·기득권 지키기가 돼 버린다. 2003년 ‘검사와의 대화’ 같은 오만방자한 꼴은 지금은 그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문제 제기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조직이기주의가 아닌 대한민국 엘리트 법률가 집단답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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