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내가 왕 바리새인이로소이다



“세계 최대 규모 교회의 담임목사라는 타이틀 자체가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했어요.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위임목사가 남긴 후일담이다. 순례 중 가지고 간 고 허윤석 선교사의 저서 ‘내가 왕 바리새인입니다’(두란노)를 읽고 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브라질과 아마존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별세했다.

예수께서 활동했던 성지를 돌아보면서 이 목사는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돌아봤다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위임목사, 내 위치, 내 능력….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이 1순위였는데 언젠가부터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교인들에게 삶의 첫 번째 순서를 올바로 알려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앞으로 5년간 교회를 ‘하나님 우선주의’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를 보면 하나님 왕국이 아니라 인간의 왕국을 세우려 했기에 사회로부터 질타를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 우선인지 순위가 변했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인간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왕국을 세우고 예수만 높여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이 어려울 땐 초심으로 돌아가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적 통찰력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한 모세와 같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극복할 수 없는 요단강이 있다. 아무리 위대한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도 언젠간 하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오고야 만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은퇴할 당시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 출애굽 40년간의 역사와 업적과 기적을 뒤로하고 기념비를 남기지 않았다.

모세처럼 철저히 죽지 못한 원로목사나 은퇴목사도 문제지만,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가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르호보암은 부친인 솔로몬왕이 너무 무거운 고역과 멍에로 백성들을 힘들게 하였으므로 이를 가볍게 해달라는 원로대신들의 조언을 무시해버린다. 르호보암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이 부친 솔로몬의 허리보다 굵고, 부친이 채찍으로 정치하였으나 본인은 전갈로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르호보암은 교만과 무지함으로 국가를 분열시키고 말았다

새로 담임목사를 맡은 목회자는 아직 목회 초년생이나 다를 바 없다. 수십 년간 설교와 목회로 교회를 목양하여 일구어 온 원로목사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목회는 야심과 열정, 프로그램과 재주, 학위와 지식,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신임 로호보암 목사들이 설익은 목회로 교회와 성도들을 힘들게 하고 분열시키고 있지 않은지를 자성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선대 목사의 사역을 눈여겨보고 존경하며 배우고 기다려야 한다.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 각종 생각, 열망, 야망, 꿈 같은 것들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한 뒤에 제자들은 엘리야의 시신을 찾으려고 사흘간 이리저리 다녔으나 발견치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엘리야를 향한 그리움은 쉽게 지울 수 없지만, 선임 목사의 향수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목사에 대한 지나친 향수병은 신임 목사의 열심을 꺾고 교회를 정체시킨다. 성도들은 새로운 후임 목사가 젊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새로운 지도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내 안의 르호보암이 죽으면 온 교회가 편안하고 크게 부흥하게 된다는 교훈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옛사람에게 묻고 열조들이 남긴 목회 여정에서 지혜를 구하자. 지난해 12월 은퇴하고 공로목사가 된 이성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은 퇴임하면서 함께 사역했던 부목사는 물론 목양실 여직원까지 일괄사표를 제출하는 지나친(?) 결단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싹 지워버리기도 했다. 이 얼마나 눈물겨운 배려인가. 이영훈 목사는 대형 교회 목회자일수록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은 임기 10년 동안 5년은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그다음 5년은 흔적을 지운 뒤 조용히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모세와 엘리야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동행에 박수를 보낸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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