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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김윤관] ‘강자와 약자’라는 편리한 프레임



“선생님의 꼬추를 봤어요.” 유치원생 여자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내뱉는다. 유치원 교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며 평범한 삶을 꾸려가던 한 남자의 인생은 아이의 말 한 마디에 송두리째 무너지기 시작한다. 제대로 조사를 해보기도 전에 마을 주민들은 그 말을 사실로 믿어버리고 이 남자에 대한 단죄에 나선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남자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남자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 남자의 인생은 점점 파멸로 나아간다. 내가 본 가장 끔찍한 영화 중의 하나인 ‘더 헌트’의 내용이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어느 호러 영화보다 더 큰 공포감을 느꼈다. 대부분의 명작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많은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중첩된 메타포 중에 내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강렬하게 느꼈던 것은 ‘약자의 이중성’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말이 진실인지 검증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남자가 유치원 교사로서, 진실된 친구로서 쌓아 왔던 오랜 신뢰마저 아이의 단 한 마디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다. 아이는 약자고, 남자는 강자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통념에서 약자는 늘 선하며, 강자는 언제 악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잠재적 폭력자이다. 약자는 보호되어야 하며, 강자는 통제되어야 한다.

아이는 결국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상처받은 아이의 무의식이 사실을 지웠다고 믿는다. 무죄를 항변하는 남자에게 유치원장은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절대 거짓말을 할 리 없는 인간존재가 있을 수 있다니! ‘약자의 선(善)’에 대한 무한신뢰다.

사회 전반에 걸쳐 약자의 사악함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조의 횡포나 느닷없이 탄압을 주장하며 세몰이에 나서는 야당, 여성이라는 약자의 위치를 이용한 사기 등도 이에 속한다. 약자라는 조건이 오히려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 실제로는 그들을 강자로 만드는 경우다.

사실 약자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아직 한국 사회는 강자의 횡포가 만연할 뿐 아니라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할 시스템이 정밀하게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자는 더욱 강해지고, 약자는 더욱 약해지는 이 시대에 약자의 사악함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강자의 논리를 강화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현상도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며, 어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빛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가 강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그들이 단지 강자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힘을 그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시와 통제의 초점은 ‘무고한 자의 피해 방지’이지 ‘강자’ 그 자체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악한 약자도 존재하며 선한 강자도 실재한다.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호의의 시선을 보내서는 안 된다. 그 편향성이 ‘더 헌트’ 속의 끔찍함을 야기하는 힘이다. 강자는 ‘무고한 자의 피해’를 당할 확률이 적지만,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강자의 무고한 피해에 대해서도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회의 시스템은 순서만큼이나 균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숨기기에는 최근 약자의 횡포 사례가 제법 자주 들린다. 약자의 역횡포에 대한 감시 시스템도 상대적으로 허술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약자와 강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향적인 선입견이 실제 ‘무고한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들(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본래의 목적을 흐리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강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이 더욱 공고하게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무고한 자의 피해 방지’라는 문제의 핵심에 다시 한 번 집중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그 핵심을 비켜나가 ‘강자와 약자’라는 프레임에 피상적으로 갇힌 부분이 많다. ‘무고한 사람의 피해’라는 달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라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상황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때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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