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한국교회를 향해 ‘위기를 기회로’라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한·일 간의 깊은 갈등과 분쟁을 보니 마음이 심히 무겁고 답답함을 감출 길 없다’로 시작되는 성명문은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적 침략과 찬탈, 그리고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한·일 무역분쟁을 일으켜 심각한 경제적 위협과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명문은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는 말씀을 근거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아침 금식기도’ ‘대한민국이 하나 됨을 위한 침묵’ ‘국민이 주도하는 운동 적극 동참’을 제안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에 교파 차원에서 결의문이 나온 것은 기성이 처음이다. 참고로 우리는 통상 ‘교단’이라고 표현하나 이는 일제가 조선의 장로회, 감리회 등 각 교파를 강제 통폐합,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묶은 데서 나온 습관적 명칭 사용으로 친일적 용어다. ‘교파’라고 해야 맞다.
기성의 성명문 행간에서 유의미한 구절을 엿볼 수 있다. ‘성결교회는 근본 교리인 사중복음 중 재림이 천황숭배 사상에 위배된다 하여 1943년 5월부터 다수의 교역자 및 성도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거나 순교 당하였고 예배와 집회 금지, 그리고 결국 강제해산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라는 대목이다. 신사참배 강요에 따른 일제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성결교회는 그래도 끝까지 저항하며 거부했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신사는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태양숭배를 하는 이들의 제사 공간이다. 일본 민간신앙 신도(神道)의 이 제사 공간에서는 자국의 전사 군인을 수호신으로 모신다. 이 중 도쿄 야스쿠니신사는 한국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희생된 황군의 혼령을 달래기 위한 국가 신사다. 따라서 아베 신조 총리의 참배는 곧 침략의 정당화인 셈이다.
또 이 신사의 격을 높인 것이 일본의 개국신이라는 천조대신을 모시는 신궁으로 이 신궁에서는 천황을 현인신으로 받든다. 일본의 이세신궁, 조선신궁이 현인신을 위한 공간이다. 신사참배가 곧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인 이유다.
조선총독부는 1930년대 들어 우가키와 미나미 총독이 본격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각급 학교에 먼저 시달됐는데 기독교계 학교는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일제는 “제국 교육의 근본을 교란한다”며 폐교 명령을 내렸다. 일제는 이어 교회를 공략했다. 주기철 목사 등 숱한 이들이 맞서 싸우며 저항했다. 1938년 2월 총독부가 각 도에 내린 시정지침에서는 집요한 탄압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기독교 교역자 좌담회를 개최해 지도계몽’ ‘기독교인의 국기경례, 동방요배, 황국신민서사제창’ ‘설교와 찬송가 등 불온한 내용 엄중 단속’ ‘국체에 맞는 기독교 신건설운동’ 등이었다. 이 지침이 있던 바로 그달에 장로회 평북노회가 처음으로 굴복 결의를 했다.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다”라는 체념식 정신승리였다.
그리고 그해 9월 10일 오전 9시30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조선장로회 제27회 총회. 평남 경찰부장과 경관 수십 명이 긴 칼을 차고 성전을 에워쌌다. 또 무술 경관 100여명은 적벽돌 예배당 안팎에 배치됐다. 참석 총대는 27노회 목사 88명, 장로 88명, 선교사 30명 등 200여명이었다. 10시50분, 총독부는 회유한 평양노회장을 시켜 신사참배 결의와 성명서 발표를 긴급 제안했다. 역시 회유된 평서노회장과 안주노회장이 동의하고 재청했다. 총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안건이 가하면 예라고 대답하십시오.” 제안자, 재청자 10여명만이 “예”라고 답했다. 나머지는 침묵했다. 동시에 총대들 사이에 끼어 앉은 지방 형사들이 일어나 위협을 표했다. 당황한 총회장이 ‘부’를 묻지 않고 만장일치 가결을 선언했다. 한국교회 수치의 현장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당하지 못한 원죄의 잉태였다.
앞서 천주교는 1935년 5월 훼절했고, 안식교는 이듬해 12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감리회는 1938년 9월 3일 ‘국민이 봉행할 국가의식’이라며 굴복했다. 성결교회는 끝까지 맞서다 1943년 12월 29일 교파가 강제 해산되고 만다. 한국교회가 부끄러움과 수치에 대해 더는 침묵해선 안 된다고 본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