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송세영] 사이다 신드롬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메 답답할 때는 톡 쏘는 사이다가 필요하다. 속이 더부룩하고 체한 듯 거북할 때도 사이다 한 모금이면 시원해진다. 사이다는 인스턴트 음료이지만 최근에는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형용사로 더 많이 쓰인다. ‘사이다 발언’이 대표적인 예인데 고구마같이 답답한 상황에선 박수를 받는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교수 시절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던진 사이다 발언으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모은 SNS 스타다. 이제 그 발언들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조국의 적은 조국이다’라는 말을 줄인 ‘조적조’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조 후보자가 불운하거나 정쟁의 희생양이 된 게 아니다. 사이다 발언에 환호하며 더 자극적이고 더 강한 발언들을 요구해온 ‘사이다 신드롬’이 낳은 필연이다.

사이다 발언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 명쾌하다는 점이다. 복잡한 현실을 복잡하게 설명하면 사이다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복잡해도 단순화해야 한다. 디테일은 생략하고 구체적인 판단보다는 추상적 가치를 부각하는 게 유리하다. 그럴수록 실체를 왜곡할 위험이 커진다.

비판의 상대방에 대해선 추상같아야 한다. 잘못은 했지만 상황을 보니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해선 사이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나 자신도 돌아보자는 식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박수는커녕 소리 소문도 없이 묻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나쁘다, 너는 틀렸다고 딱 잘라 말해야 한다. 이게 사이다 발언의 정석이다.

때로는 사이다 발언도 필요하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 뒤로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면서 앞으로는 공명정대한 척하는 이들,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으로 포장하려는 이들의 가면을 벗기는 데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일상화하고 남용하면 부작용이 속출한다. 흑백논리를 부추기고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다. 정치적·이념적 선동이 만연하게 하고 극단주의를 부추겨 민주주의의 성숙을 방해한다.

한·일 갈등을 놓고도 자극적인 사이다 발언들이 난무한다. 우리나라에는 문재인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적극 지지하거나 결사반대하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규탄하면서도 한국경제에 가져올 파장이나 안보 불안을 우려할 수 있다. 실리를 생각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낼 수 있다. 이를 반일과 친일, 매국과 애국으로 일도양단하면 당장은 사이다 발언이라 칭찬받는다. 정치·외교·경제 전문가들도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전망하는 한·일 관계를 비전문가들이 흑백논리로 재단해 버린다. 다른 생각을 가진 전문가들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중도나 실용이 설 자리는 사라지고 이념과 당위만 남는다.

조 후보자처럼 시원하게 사이다 발언을 내놓던 인물이 심판과 검증의 대상에 오르면 발목도 잡힌다. 상대방을 준엄하게 꾸짖을수록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만 실제 그러는 이는 거의 없다. 스스로를 성찰한다면 그렇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없다. 성경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관대하고 너그럽다. 누가 봐도 언행이 불일치하는데 스스로는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사회에도 교회에도 자극만 좇는 사이다들이 너무 많다. 독설을 퍼붓고 상대를 조롱하고 경멸하고 난도질한다. 그들도 문제이지만 맹목적으로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문제다. 사이다 신드롬은 이들이 만들어낸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떳떳한가 묻지 않으면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지금 조 후보자의 사이다 발언이 위선적이라며 비판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더 위선적일 수 있다.

사이다의 주원료는 백설탕 구연산 탄산이다. 설탕물과 다름없다. 잠깐의 청량감이나 당 보충에는 몰라도 시도 때도 없이 마시면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사이다는 스포츠 게임 휴식 갈증이나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사이다를 마시면서 성찰하고 사색한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사이다 발언도 비슷하다. 통쾌하고 시원하다면 손뼉을 쳐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다면 더 강한 사이다를 찾으면 안 된다. 사건의 맥락과 상황을 살펴보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차를 공들여 끓이는 일처럼 번거롭고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성찰이 없다면 사이다 발언은 인스턴트일 뿐이다. 딱 그때뿐이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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