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다산 정약용과 조국



동백꽃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 선운사에 ‘신비한 책’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이 책은 사찰 뒤편 깎아지른 절벽에 조형된 마애불 배꼽 안에 들어 있다고 했다. 책을 얻는 사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등의 얘기가 돌았다. 1789년 어느 날 전라감사 이서구가 이 책을 가지려고 했다. 그래서 배꼽에 손을 대자 갑자기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는 바람에 책을 꺼내지도 못하고 도로 넣었다는 얘기가 퍼진 뒤로는 그 책을 빼내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책 사건으로부터 1세기가 흐른 1890년대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온갖 상소문이 범람하는 등 정쟁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조선에 진출한 강대국들은 조선을 자신들의 손에 넣으려고 기회만 노렸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에 처한 조국(祖國)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31’(파랑새어린이)에 나오는 얘기다. 1892년 밤, 시골 마을 작은 오두막에 남자 서넛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감시하는 눈이 두려워 집회에 나오지 못하는 교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마애불 배꼽 속에 있는 책을 빼내면 어떻겠습니까?” 며칠 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선운사로 가는 길에 수백 개의 횃불이 움직였다. 부처상 앞에 모인 동학교도들은 대나무와 새끼줄로 부적을 만들어 부처상 앞에 펼쳐 놓았다. 마침내 동학교도들이 책을 빼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야기를 들은 고을 수령은 책을 차지하려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동학교도 수백 명이 잡혀가 고문을 당했지만, 책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점차 그 신비한 책을 가진 이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설도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2년 뒤 1894년, 민심은 극도로 돌아섰다. 동학교도들은 서양과 일본을 몰아내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과 신분 차별을 폐지할 것, 또한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할 것 등을 요구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이들은 정부군을 물리치며 승승장구했다.

전봉준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다던 책은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이 1801년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귀양살이 중 목숨을 내놓고 쓴 치민의 지침서 1표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였다. 다산은 이 책을 통해 행정기구 개편을 비롯해 관제·토지·부세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했다.

마애불 배꼽에 책이 들어 있다는 것은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동학교도들이 그 전설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전봉준이 봤으리라는 것도 추측일 뿐이다. 다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어려웠던 백성들이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언젠가는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지 않았을까.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 ‘진보집권플랜’을 쓴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曺國) 전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설상가상 9월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다. 공정사회 강령을 내건 촛불 정권이 들어섰지만, 특권 공유와 상속 등의 적폐는 여전하다. 여권의 독선과 야권의 마녀사냥식 정쟁으로 우리의 조국이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다.

오늘은 제20회 사회복지의 날이다. ‘노동과 복지가 있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사회주의노동자연맹 활동을 펼쳤던 조국 후보자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윤리와 책임이 따르지 않는 민주주의는 부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또 오만하고 자만하면 ‘내부 적폐’로 몰려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무리 노동과 복지가 있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적폐가 청산돼도 죄악과 불의는 끊이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길 바란다. 법무, 검찰 개혁만으로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영원한 삶의 길을 찾아 헤매지만, 사람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먼저 자신부터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20대 청년 시절 목이 터져라 불렀던 ‘죽창가’를 다시 외칠 게 아니라 영원한 스승 다산에게 지혜를 구하길 바란다. 그리고 성경을 펴놓고 먼저 뉘우치며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는 중생(重生)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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