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아 ‘야미’ 설교라도 해야지 않는가.”
1940년대 초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발악하고 있었다. 각 교회는 일본의 감시가 무서워 ‘천황의 충량한 신민’으로서 예를 다했다. 교회는 신사참배, 동방요배, 황국신민 서사 제창을 하면서 교화기관으로 전락했다. 무력 앞에 훼절하는 목회자가 속출했고 적극적으로 친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의 무디’로 불리는 부흥사 이성봉(1900~1965) 목사는 당시 반일 설교 내용이 문제가 되어 기소된 상태에서도 만주, 황해도, 평안도 등 각 처소를 돌며 말씀을 전했다. 갈급한 무리가 있는 한 어떻게든 달려갔다.
어느 날 대동강 변 베기섬 교회에 변장하고 잠입해 심령들에 생명의 말씀을 전하려 하자 목사가 벌벌 떨며 주일 강단에 세우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 목사는 야미 설교(비밀 설교)라며 달랜다. ‘야미’는 ‘감추다’라는 뜻의 일본어다. ‘야매’라는 외래어로 파생돼 ‘정통적이지 않은 방법’을 이를 때 하는 말이 됐다.
거절당한 그는 ‘발의 먼지까지 털어’ 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이웃한 중화군 각금리교회로 가 주일 낮과 밤 대성회를 열었다. 목사와 성도들이 열렬히 환영했고 성령의 은사가 쏟아졌다. 목회자의 자세가 양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목사의 설교 내용은 지극히 복음적이었다.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나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설교 제목이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 자연계와 국제 사회의 징조를 보십시오. 또 인심의 징조를 보십시오. 교회의 상태를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것을 보십시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민족이나 다 망합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가 이러한 설교조차 못하고 황군 복장 한 채 신사참배를 했다. 예배 중 황국신민서사 제창은 국가 행사이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정신 승리’를 했다.
일제강점기 평양은 성시화된 도시였다. 1924년 잡지 ‘개벽’ 9월호는 인적·물적으로 가장 큰 세력이 기독교라며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평양이야말로 목사님도 많고 장로님도 많다.…서점에 들어가도, 연회(宴會)에 들어가도, 뱃놀이해도, 냉면집에 들어가도 장로·목사…간통 소송자도 장로, 고리대금업자도 목사·장로이다…’
평양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렸음에도 교회 수가 늘자 교권 다툼을 벌이며 타락했다. 그리고 네로 치하와 같은 강점기를 맞게 됐다.
그 타락 풍경이 오늘 한국교회에 재현되고 있다. 목회자들이 교인과 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정의(定義)의 말씀 규정조차 강단에서 내지 못한다. 경제적 양극화, 소수자 차별과 혐오, 세대·지역 갈등, 불공정한 법 집행 등 사회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애써 피한다. 동성애, 자살, 이단·사이비 문제 등 명백한 불의에도 입을 닫는다. “목사님, 예배 때 자살 문제 거론하면 칙칙하다고 교인 다 떠납니다”라는 말에 움찔한다. 이혼 문제 역시 ‘배려’를 이유로 피해 간다.
그렇다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리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있냐면 그렇지도 않다. 신앙적 성찰 부족이 신학의 부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신학자가 지성의 목소리를 담아 광야에서 외치면 우리 사회는 귀담아들었다. 이전까지 신학자·목회자는 지식을 갖춘 사회의 리더였으나 이제는 성경 지식만 갖춘 특정 분야 전문가로 국한되고 말았다.
인공지능(AI)을 바탕으로 한 로봇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사회다. 이로 인해 현대인은 아노미 상태일진대 목회자는 인간의 감각 생각 의식에 대해, 그리고 그 너머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지금도 ‘목회신학’ ‘교회운영론’ ‘기독교사회복지’ 과목으로 꾸려진 신학대학원 커리큘럼이 목회자 지식 기반의 전부다. 그들이 ‘인공지능 시대의 영성’에 대해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것의 영원함’(고후 4:18)을 강권했던 시대의 방식으로는 설득될 수 없는 지식 사회다. 성서의 정의(定義)를 깨치지 못하고 하나님 정의(正義)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하나님 정의에 대해 ‘명백히 밝혀 규정화’도 못하는 설교자의 설교야말로 ‘야매 설교’다. 설교는 궁리가 아니라 말씀의 행동 양식이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